세운상가와 청계천 일대

세운상가는 1967년부터 1972년까지 세운, 현대, 청계, 대림, 삼풍, 풍전(호텔), 신성, 진양상가가 차례로 건립된, 총 길이 약 1km에 달하는 메가스트럭쳐이자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건물입니다(관련내용 바로가기). 준공 당시에는 “쌀가게와 연탄가게를 빼고는 서울에서 보고 들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갖춘” 상가이자 고급아파트로써, 특히 70-80년대 가전제품과 80-90년대 컴퓨터, 전자부품 등으로 특화된 상가로써 입지를 굳혔지요.

60년대 이전만 해도 이곳 일대는 청계천변의 고물상지대였습니다. 세운상가가 들어서기 전, 청계천 일대에는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각종 기계, 공구, 전자제품들을 판매하거나 제품을 뜯어서 부품을 팔고 그 부속품으로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판매하는 사업장들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광도백화점과 아세아백화점을 중심으로 장사동, 청계천 일대에는 전자업종들이 집중 분포했고, 60년대 부품 판매와 라디오 조립 판매 수준에서 70년대에는 완제품을 만드는 단계로 발전하면서 전자업종이 팽창하기 시작했습니다.

고철로 흘러나온 미군의 무전장비를 망치로 빠개 필요한 부속을 건져내는 작업이 이루어지는가 했더니 손재주 있는 몇몇 기술자들이 광석(鑛石)을 고물무전기의 리시버에 연결시켜 광석라디오를 조립, 학생들에게 팔기도 했다. 한걸음 더 나가 진공관라디오를 만들어낸 것이 최초의 국산라디오인 5球 수퍼라이도. 이와 함께 볼륨, 바리콘 등 기초적인 부품을 두드려 만들기 시작하면서 부품개발이 이루어져 전자공업의 첫걸음이 시작된 것이다. ["상권 전국시대, 전자부품상가", 경향신문 1976년 12월 9일자 기사]

그러나 세운상가는 준공 직후부터 주거와 상업 기능이 충돌하였고, 강남 개발로 인해 고층부 아파트의 인기가 하락하며 주거 기능이 약화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아파트는 점차적으로 팽창하는 전자업종 기술자들의 작업실과 사무실로 대체되었으며, 저층부 점포에도 전자 업체들이 들어서면서 70년대에 이르러 세운상가는 곧 전자상가라는 인식이 굳어지게 되었습니다.

60년대에는 라디오와 오디오 기기의 조립과 제조, 수리가 중심이었으며, 70-80년대에는 TV 판매와 수리가 주요한 업종으로 등장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종로와 세운상가 일대에 소재한 ‘라디오/테레비기술학원’은 더 많은 예비 기술자들을 이 지역으로 불러들이는데 촉매가 되었고, 교육과 취직, 개발과 창업에 이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특히 80년대에는 우리나라 개인용 컴퓨터의 확산과 보급에 전진기지가 되어 애플2의 복제에서부터 컴퓨터 주변장치의 국산화, 국산 개인용 컴퓨터의 개발에 이르기까지, 당시로선 혁신적인 사건들이 벌어집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삼보컴퓨터와 한글과컴퓨터가 세운상가를 배경으로 창업했으며, 87년 용산전자상가가 조성되기 전까지 우리나라 컴퓨터 시장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더불어 아케이드 게임기와 노래방 반주기 등이 세운상가에서 활발히 제조되었으며, 80-90년대의 오락문화 확산에 이바지하였습니다. 이와 함께 빨간 테이프와 성인 잡지, 정식 라이센스 없이 복제된 음반인 일명 '백판'이 세운상가 데크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유통되어 ‘세운상가 키즈’들의 활동무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2000년대 들어 인터넷과 디지털, 모바일 기술 등의 발달로 유통구조가 크게 변화하면서 세운상가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러나 여전히 세운상가와 그 주변에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각종 개발품 제작, 전문 수리업종, 소규모 제조업체들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전기/전자부품을 비롯하여 금속, 아크릴, 공구, 건축자재, 조명, 음향 등의 재료를 지척에서 구할 수 있고, 또한 이들을 활용한 다양한 맞춤형 생산업체들이 입지해 있습니다. 서울시는 이러한 세운상가의 잠재적 가능성을 바탕으로 ‘도심 창의제조산업의 혁신지’로서 세운상가의 재생사업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