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

도시재생

세운상가는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 건물입니다.
1968년 준공 이후 서울의 주거 중심, 유통 중심으로 주목을 받았으나 원도심 과밀 억제 정책이 이어지면서 위기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1970년대 강남 개발에 이어 1987년 용산전자상가의 개발로 컴퓨터, 전자 업종이 대거 이전하였고,
세운상가 내 유통과 제조업이 도심 부적격 업종이라는 오명을 받으며 199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전면 철거가 논의되었습니다.
그 절정은 2006년 세운상가 일대를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하여 세운상가군 전체 상가를 철거한 후 공원을 조성하고,
주변 일대를 고밀도로 개발하는 계획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계획에 따라 상가군 북단에 있는 현대상가 1개동이 철거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보상 문제와 2008년 금융위기의 여파로 사업성이 악화되어 전면 철거 계획은 보류되었으며, 2014년 서울시가
세운상가 존치 결정을 공식화하면서 현재는 재정비촉진지구의 분리 개발방식을 골자로 한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국가사적인 종묘와 마주하고, 가장 중요한 상업 지구인 종로와 근접한 세운지구 곳곳에는 도심 최대의 제조산업 골목이 있습니다.
전기, 전자, 조명, 건축자재, 철공소 등과 서울 인쇄업체 67%가 밀집해 인쇄산업특정개발진흥지구로 지정된 대한민국 인쇄 1번지 충무로 일대까지…
7천여 사업체와 2만여 기술자가 밀집한 골목 안에는 오랜 기간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3~40년 이상 자기 작업을 해 온 기술자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세운상가, 국내 최초의 주상 복합건물


세운상가는 1967년부터 1972년까지 세운, 현대, 청계, 대림, 삼풍, 풍전(호텔), 신성,
진양상가가 차례로 건립된, 총 길이 약 1km에 달하는 메가스트럭쳐이자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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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공 당시에는 “쌀가게와 연탄가게를 빼고는 서울에서 보고 들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갖춘” 상가이자 고급아파트로써, 특히 70-80년대 가전제품과 80-90년대 컴퓨터,
전자부품 등으로 특화된 상가로써 입지를 굳혔지요.

60년대 이전만 해도 이곳 일대는 청계천변의 고물상지대였습니다.
세운상가가 들어서기 전, 청계천 일대에는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각종 기계, 공구,
전자제품들을 판매하거나 제품을 뜯어서 부품을 팔고 그 부속품으로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 판매하는 사업장들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특히 광도백화점과 아세아백화점을 중심으로 장사동, 청계천 일대에는
전자업종들이 집중 분포했고, 60년대 부품 판매와 라디오 조립 판매 수준에서
70년대에는 완제품을 만드는 단계로 발전하면서 전자업종이 팽창하기 시작했습니다.


고철로 흘러나온 미군의 무전장비를 망치로 빠개 필요한 부속을 건져내는
작업이 이루어지는가 했더니 손재주 있는 몇몇 기술자들이 광석(鑛石)을
고물무전기의 리시버에 연결시켜 광석라디오를 조립, 학생들에게 팔기도 했다.
한걸음 더 나가 진공관라디오를 만들어낸 것이 최초의 국산라디오인
5球 수퍼라이도.
이와 함께 볼륨, 바리콘 등 기초적인 부품을 두드려 만들기 시작하면서
부품개발이 이루어져 전자공업의 첫걸음이 시작된 것이다.

["상권 전국시대, 전자부품상가", 경향신문 1976년 12월 9일자 기사]

라디오와 테레비, 수입가전의 메카에서 컴퓨터 복제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세운상가는 준공 직후부터 주거와 상업 기능이 충돌하였고, 강남 개발로 인해 고층부 아파트의 인기가 하락하며 주거 기능이
약화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아파트는 점차적으로 팽창하는 전자업종 기술자들의 작업실과 사무실로 대체되었으며, 저층부 점포에도
전자 업체들이 들어서면서 70년대에 이르러 세운상가는 곧 전자상가라는 인식이 굳어지게 되었습니다.

60년대에는 라디오와 오디오 기기의 조립과 제조, 수리가 중심이었으며, 70-80년대에는 TV 판매와 수리가 주요한 업종으로
등장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종로와 세운상가 일대에 소재한 ‘라디오/테레비기술학원’은 더 많은 예비 기술자들을 이 지역으로
불러들이는데 촉매가 되었고, 교육과 취직, 개발과 창업에 이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특히 80년대에는 우리나라 개인용 컴퓨터의 확산과 보급에 전진기지가 되어 애플2의 복제에서부터 컴퓨터 주변장치의 국산화,
국산 개인용 컴퓨터의 개발에 이르기까지, 당시로선 혁신적인 사건들이 벌어집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삼보컴퓨터와 한글과컴퓨터가
세운상가를 배경으로 창업했으며, 87년 용산전자상가가 조성되기 전까지 우리나라 컴퓨터 시장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더불어 아케이드 게임기와 노래방 반주기 등이 세운상가에서 활발히 제조되었으며, 80-90년대의 오락문화 확산에 이바지하였습니다.
이와 함께 빨간 테이프와 성인 잡지, 정식 라이센스 없이 복제된 음반인 일명 '백판'이 세운상가 데크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유통되어
‘세운상가 키즈’들의 활동무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2000년대 들어 인터넷과 디지털, 모바일 기술 등의 발달로 유통구조가 크게 변화하면서 세운상가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러나 여전히 세운상가와 그 주변에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각종 개발품 제작, 전문 수리업종, 소규모 제조업체들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전기/전자부품을 비롯하여 금속, 아크릴, 공구, 건축자재, 조명, 음향 등의 재료를 지척에서 구할 수 있고,
또한 이들을 활용한 다양한 맞춤형 생산업체들이 입지해 있습니다.

서울 인쇄업체의 67.5% 중구에 밀집

한편 을지로에서 퇴계로까지 다시세운프로젝트 2단계 구간의 중심엔 삼풍상가, 호텔PJ, 인현, 진양상가가 줄지어 있습니다.
충무로 인쇄골목은 인현동, 광희동, 오장동, 필동 등을 아우르는 30만㎡ 규모의 국내 최대 인쇄업체단지입니다.
2017년 인쇄산업 특정개발 진흥지구로 지정된 이곳은 서울 전체 인쇄업체의의 67.5%가 밀집해 있어,
기획부터 후가공까지 모든 인쇄공정 처리가 가능한 곳입니다.

충무로는 1960년~1970년대 한국 영화 제작사의 상당수가 자리 잡고 있었던 영화의 거리로 단성사, 피카디리, 대한극장, 서울극장 등
당시의 주요개봉관들이 몰려 있으면서 이에 영화 포스터와 홍보물 제작을 위해 출력실, 인쇄소가 다수 생겨났습니다.

1983년 장교동 재개발 사업이 착공되면서 장교동에서 철수하는 업체들이 인현동 일대로 모이면서 충무로 인쇄산업은 도심부에 위치한
기업들과 관공서들의 폭발적인 수요 증대에 따라 계속 성장했습니다. 이후 기술 발전에 따라 인쇄 공정이 변화하고,
새로운 기계들의 등장으로 공정이 단축되고 통합되면서 인쇄업계의 분업체계가 재편되고 있지만, 인현동 인쇄골목의 업체들은
비싼 기계 값과 높은 임대료 부담 때문에 소규모 작업장 형태의 분업체계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충무로 인쇄골목은 쇠락한 환경, 인쇄업 안팎의 급격한 기술변화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지만 오랜 역사를 지닌 만큼
다양한 소공인들이 모여 다채로운 생산조건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강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도심부에 위치해 서울은 물론
전국의 고객들이 찾아오기 편리한 이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자원과 입지의 이점을 살려 충무로 인쇄인들은 새로운 가능성에 도전하고 있고,
이곳 산업 생태계를 더욱 풍성하게 일구고 있습니다.

영화 도둑들의 촬영지, 진양상가

퇴계로와 맞붙은 진양상가(아파트) 역시 주상복합으로 17층 중 지하부터 4층까지가 상가이고, 그 이상은 아파트입니다.
당시 국내에선 보기 드문 엘리베이터와 양변기, 중앙난방 시스템을 갖춰 영화배우나 고위 관료 등이 입주하였고,
이들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상가 5층에는 중앙정보부 분소도 들어와 있었다고 합니다.

1968년~1972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회의원회관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당시 국회는 상가 5개층을 통째로 빌려 국회의원 175명에게
한 채씩 나누어 주기도 했습니다. 3층에 조성 된 1,300평 규모의 진양꽃상가는 한때 국내 최대 꽃상가였습니다. 현재는 200여개의 업체가
영업 중이지만 화훼업 침체와 맞물려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 중에 있습니다.

서울시는 이러한 세운-청계천-을지로-충무로 일대의 잠재적 가능성을 바탕으로 ‘메이커시티 세운: 도심 창의제조산업의 혁신지’로서
세운상가의 재생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