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맵] 을지로 사용법 1

을지로 사용법 1

Chapter 1. 우리는 어떻게 을지로를 사용하게 되었는가

intro

2016년 산림동에 터를 잡은 후 나에게 을지로 길라잡이가 되어준 친구가 있었다.     ‘을지로움’을 운영했던 이지성 작가였다. 반년 먼저 대림상가 옆 골목에 터를 잡았던 그는 재밌는 입담을 겸비한 을지로 전문가였다. 구석구석 모르는 곳이 없었고, 모르는 맛집이 없었다. 그와 현장 곳곳을 방문하면서 들었던 이야기, 활용 가능한 공정들은 혼자 듣기 아쉬운 내용들이었다. 이후 ‘을지로사용법’이라는 강연을 열어 을지로를 활용해 창작을 하고 싶은 이들을 초대해 오고 있다.

 

산림동 풍경 ⓒ고대웅

90년 이후로 서울에서 태어난 필자와 비슷한 세대를 살아간 이들이라면, 많은 수가 아파트에서 자랐을 것이다. 마을은 골목을 잃었고 복도와 엘리베이터를 얻었다. 콘크리트 집들은 층층이 쌓인 마을은 우뚝 솟아 도시를 정복해 나갔다. 현대과학문명이 집약된 생활공간은 처음부터 그런 곳이었던 것처럼 느껴젔다. 때문에 우리가 골목에 들어서 느끼는 을지로 철공소 마을의 첫 인상은 서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추정해 본다. 두려움? 궁금함? 망설임?,등등의 부정에 가까운 감정일 것이다.

하지만 걱정 마라.

시장판에서 주워들은 5년간의 노하우를 공유 드리리다.


을지로

을지로는 본래 시청에서 DDP까지 청계천 이남을 따라 길게 늘어선 길을 말하지만, 요즘은 3가와 4가 일대 레트로 문화현상의 장을 칭하는 명사로 쓰이거나 도심제조업단지를 통칭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옛 청계천처럼 도심제조업단지의 대명사로서 영광을 지금은 을지로가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한성 내에 제조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과 공간들이 있었다. 청계천 이남 일대 남겨진 지명들이 그를 증언하고 있다. 긴 시간 자연히 형성된 제조업단지는 근대를 거치며 발전한 과학문명의 이식을 통해 양적, 질적 발전을 거쳤다. 해방 후 한국 전쟁이 휴전으로 일단락되고 도심의 폐허들은 생존을 위한 터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자연히 공업단지는 영역을 확장하게 된다. 생존을 위해 생겨난 공장들로 시장을 만들었고 그 안에서 산업 생태계가 만들어져 못 만드는 것이 없는 마을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을지로의 장인과 예술가

제조를 업으로 삼는 ‘장인’과 작품을 만드는 것을 업으로 삼는 ‘예술가’는 손으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다. 지금은 전혀 다른 직업군으로 분류 되는 것 같은 둘은 역사 속에서 각자의 영역을 만드는 동시에, 중간지대에서 만나 지속적으로 서로의 성장에 관여해왔다. 기술의 발전은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것들의 확장시켰고, 이는 예술사의 발전과 직결 되었다.

뒤샹과 함께 개념미술이 탄생하면서 산업이 작가의 창작을 대리해 줄 수 있는 길이 열린 오늘 을지로의 제조업마을은 무한한 창작의 공간이 되었다.

을지로는 어떤 것들을 만들어 왔는가

한국 경제가 성장하는 곡선은 을지로에서 생산된 것들이 사회 곳곳으로 퍼져나가는 생산물의 누적 수와 비례 했을 것이다. 어떤 것들이 주로 만들어 졌는지는 명확히 알 순 없겠으나 많은 공장들의 간판을 보면 추정이 가능할 것 같다. 간판들은 각양각색으로 모두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들어가 있는 구성은 ‘상호명’, ‘업종’, ‘고객대상’이다. 그 중에서 ‘고객 대상’ 중 많은 부분은 ‘학생작품’이다. “학생” + “작품”이라는 단어를 해석해 보면 “많은 비용을 지불 할 수 없더라도, 전문적이지 않더라도, 나이가 어리더라도, 소량이라도 만들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추정컨대 을지로 공장들의 낮은 턱 덕분에 미술대학을 재학한 이들이라면 (특히 조소를 전공한 이들이라면) 을지로를 들리지 않은 이들은 없을 것이다. 그렇게 우수하지 않더라도 숙련된 기술로 무엇인가를 만들어 볼 수 있는 기회를 우리 도시는 을지로를 통해 제공 해올 수 있었다.

예술가의 말을 시각화해줄 수 있는 숙련 기술공이 모여 있는 곳. 다품종 소량생산에 최적화 되어 그런 고객을 기다리는 곳이 을지로이다. 이제 복잡한 골목을 따라 빼곡하게 늘어선 ‘나를 위한 작업실들’로 출발해보자.

ps. 골목을 걷다 깜짝 놀라지 말자

을지로의 삼순이 ⓒ고대웅

골목엔 사람 외에도 많은 생명들이 살고 있다. 목줄 없이 골목을 활보하는 백구 ‘삼순이’와 닥스훈트 믹스 ‘깐돌이’와 사바나의 사자마냥 골목을 활보하는 길냥이들을 만날 수 있다. 중형견인 삼순이는 목줄 없이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겁을 먹거나 놀랄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골목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한 없이 친절하거나 무심하니 안심해도 좋다. 살면서 우여곡절이 많았던 깐돌이는 삼순이에 비해서 예민하다. 겁이 많아 잘 놀라고 사람을 피하지만 가끔 다른 개의 냄새가 나면 자신의 영역을 침해 받았다고 생각해 공격성이 발현 될 때가 있다. 하지만 항상 주인이 곁에 있으니 경계하거나 무서워하지 않고 짖거나 경계하는 모습에 당황하지 않는다면 사고 날 일은 없을 것이다. 낮 동안 지붕 위를 뛰어 다니던 길냥이들은 밤이되면 지상으로 내려와 여유를 즐긴다. 대부분의 길냥이들이 친절한 동네 분들 덕분에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고양이를 좋아한다면 추루를 들고 골목을 방문하길 추천한다. 많은 고양이들과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