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맵] 신화를 써 내려간 그들에게 보은하며, 장인의 화원

신화를 써 내려간 그들에게 보은하며, 장인의 화원

장인의 화원

청계천 남면을 따라 걷다 ‘창경궁로5다길’에 들어서면 붉은색 벽돌담을 따라 녹지공간이 늘어선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마을로 들어서는 길목에 자리 잡은 작은 녹지공간은 금속제조업단지를 기념하고자 만들어진 「장인의 화원」이다.

산림동과 입정동은 현재까지 도심 금속제조업단지가 형성되어 있어 창작자들에겐 ‘성지’ 같은 공간이다. 거주지역이 제조의 성지가 되기까지, 골목의 구성원들은 “대접”보다 “묵묵함”을 택했다. 그 묵묵함 속에서 후손들은 보릿고개를 겪지 않게 되었고, 국가는 제 모습을 갖춰 갔다. 그 시간 속에서 골목은 못 만드는 것이 없는 곳이 되어버렸다. 이곳에서 만들어지고 설치된 철재 작품이 ‘왜’ ,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제작 배경과 과정을 나누고자 한다.

시작

금속제조업단지의 동쪽 날개에 해당하는 『산림동』은 이름만 보면 ‘산’에 나무가 가득한 ‘숲’이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공업단지로 서울에서 가장 녹지면적이 낮은 지역 중 하나다. 그도 그럴 것이 산림동은 현재 600여년 된 골목길,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의 빈자리를 채워나간 건축물들, 촘촘하게 서로를 의지하며 뜨겁게 일하는 공장들이 가득한 조선시대 도심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한양을 감싸는 4대 산이 한양의 백성들에게 공유되는 정원이었다. 하지만 이제 산들은 고층 빌딩 뒤로 숨겨졌고, 산림동은 사막화된 섬이 되어버렸다.

1936년과 2016년 산림동 거리 비교 ⓒ고대웅

오래된 골목은 낮엔 바삐 사는 인간들의 생업의 터전이 되어주었고, 밤이 되면 고양이와 담비들에게 놀이터가 되어주었다. 하지만 이런 지역의 문화, 생태적 가치와 대조적으로 콘크리트로 덮인 땅은 동물들에게 배설을 숨길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자연히 지면 위로 노출된 배설물에는 파리가 들끓었다. 이에 지역민들은 동물이 접근해 배설하지 못하도록 구석구석에 날카로운 철 부산물들이 쌓아두었다. 배설물을 막기 위해 쌓인 철 부산물들은 오히려 쓰레기가 모이는 빌미를 제공해주었다. 모두의 공간이었던 길목은 어느 순간 누구의 공간도 되지 못하였다.

장인의 화원 대상지 ⓒ고대웅

사막화되는 원도심에 생명들을 위해, 지역의 역사와 사람들을 기념하기 위해 두 가지를 해갈할 공간이 필요해 보였다. 산림동의 이름에 따라 식물로, 지역의 제조 강점을 활용해 철로 땅의 기억에 보은하는 조형 작품을 만들기로 정하였다.

제작과정

제작과정1. 스케치 

장인의 화원 스케치1 ⓒ고대웅

장인의 화원 스케치2 ⓒ고대웅

장인의 화원 스케치3 ⓒ고대웅

첫 시작은 스케치 한 장이었다.  스케치 한 장이 현실화되는 과정을 공유한다.


제작과정2. 디자인/설계 

장인의 화원 설계 및 모델링 ⓒ고대웅

먼저, 골목을 오가며 그림으로 풀어낸 스케치를 지역의 제조업과 작업 할 수 있는 형태의 설계도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설계도는 ai 파일로 변환되어 레이져 가공 업체로 넘어 간다.


제작과정3. 자재가공

신진레이져 장인의화원 커팅파일1 ⓒ고대웅

신진레이져 장인의화원 커팅파일2 ⓒ고대웅

ai파일이 공장 사무실에 도착하고 커팅 시간과 자재의 값에 따라 비용을 산출한다.

두께 5T의 거대한 철판이 공장의 일꾼들에 의해 레이져 커팅기 위로 올라간다. SF영화에서처럼 높을 열의 레이져를 쏴대는 노즐은 ai파일에 맞춰 x, y축으로 움직이며 철판을 잘라낸다. 여기서 우리는 도색을 하지 않을 것이기에 코팅이 되어 있지 않은 cr철판으로 주문을 의뢰했다.

※주의: 사무실이 친절하진 않으니 사근사근한 말투는 기대하지 말고, 내가 친절하게 그들을 대하길 추천한다.

협력업체  신진철강레이져


제작과정4. 플랜터 제작   

제작중인 플랜터 ⓒ고대웅

잘려진 철판은 무게와 거리에 따라 사람의 손에 들려 옮겨지기도 레어카에 실려서 옮겨지기도 한다. 공장에 철판들이 자리를 잡으며 부품과 부품이 용접되어 하나의 덩어리로 완성된다.

협력업체   SM유리금속 | 웰빙금속


제작과정5. 안내판 제작

유리로 제작된 안내판 ⓒ고대웅

장인의 화원이 만들어진 이유가 씌일 안내판이 필요했다. 장인의 화원이 기대어 있는 벽돌담을 가리지 않는 비를 만들기 위해 유리를 선택하게 되었다. 쇠파이프로 프레임을 두르고 밤색 유리에 실크스크린으로 글을 써서 설치하기로 했다.

협력업체  SM유리금속그린실크


제작과정6. 부식액 처리

부식액 처리한 화분 ⓒ고대웅

철은 시간이 지나면 산화되면서 붉은 색으로 부식된다. 하지만 흐르는 빗물에 따라, 얼룩이 지며 전체적으로 부식이 될 때까지는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때문에 부식을 앞당기기 위해 부식액을 구매해 철판에 칠을 해주었다. 시퍼렇게 빗나던 철판은 붉게 산화되어 담벼락과 더욱 어우러졌다.

협력업체  무지개안료


완성

장인의 화원 전경 ⓒ고대웅

철공소 사장님들의 손을 빌어 완성된 화단은 조경인들의 손을 거쳐 생명이 사는 공간이 되었다. 길고양이 배설물로 파리가 꼬이던 골목엔 꽃이 피고 나비와 벌이 날아드는 공간이 되었다. 개미들은 진딧물로 농사를 짓고 무당벌레는 진딧물을 사냥하기 위해 모여들기도 한다. 이전처럼 길고양이들이 배설을 하지만 파리들은 무당거미들이 식물들 사이로 쳐놓은 거미줄에 걸리고 만다. 장인들의 손이 모여 만든 작은 틈에 피어난 생명은 서로 경합을 벌이며 살고 있고, 이를 보는 마을 사람들은 다시 손을 모아 가뭄이 들면 물을 주고, 식물이 마르면 보식을 하며 같이 공간을 살펴주고 있다. 간혹 지나던 행인들이 앉아 쉬기도 하고, 지역의 이야기를 읽기도 하고, 동네에서 어떤 공정들을 해볼 수 있는지 비춰보는 안내소의 역할도 하는 장소가 되었다. 철의 골목을 방문하거든 잠시 화원에 쉬어 가길 바란다.

장인의 화원 라일락 ⓒ고대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