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는기술대학 네트워크코스] #1. 을지로아크릴산업리포트

 

<을지로는기술대학 네트워크코스> 산업리포트

지역의 정체성과 산업을 이끌었던 청계천을지로 일대 제조업체들을 중심으로 을지로 제조업의 역사와 네트워크의 특징을 살펴봅니다. 전문 에디터가 취재한 리포트를 통해 을지로 제조업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봅니다.

 

#1. 을지로아크릴산업리포트

글. 심영규

 

감매거진 플라스틱 편을 제작하면서 만난 흥왕아크릴과 전문가들 그리고 지난 11월 6일 중부아크릴과 11월 19일 금강아크릴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리포트를 작성했다. 이길중씨가 대표로 있는 중부아크릴은 1992년 설립된 곳으로 일대 대표 업체로 꼽힌다. 을지로 일대에선 가장 오래되고 현재도 6~7명 정도가 일하는 제법 규모가 큰 업체로 현재 2개의 공장을 운영 중이다. 금강아크릴은 1988년 설립돼 2대째 이어오고 있다. 비교적 젊은 40대의 사장인 이헌씨가 운영 중인데 그는 20세 때부터 아버지를 도와 현장에서 작업해 26년 가까운 기술노하우를 가지고 있지만, 홀로 영세하게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이 리포트를 통해 아크릴의 특징과 업체의 특성, 을지로 아크릴 업체의 한계를 동시에 짚어본다.

아크릴의 특성: 유리를 대신하다

플라스틱은 유리의 투명함을 구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재료 중 하나다. 그중에서도 아크릴은 빛을 가장 청량하게 투영해 유리의 대체재로 주로 활용된다. 아크릴은 일상에서 흔하게 사용하는 플라스틱 중 하나로, 폴리메틸메타크릴레이트, 즉 PMMA를 원료로 한다. 아크릴의 원래 명칭은 폴리메틸메타크릴레이트(PMMA, polymethylmethacrylate)라고 부른다. 메타크릴산메틸(MMA)을 중합하여 얻는 수지(이하 PMMA)로 아크릴의 특징으로 대표되는 투명성내구성은 모두 이 합성수지의 물성에서 비롯되었다. PMMA는 특유의 투명함으로 인해 유리와 비교되는 경우가 많은데, 물성은 그보다 더 우수하다. 강도는 6~17배 더 높고, 깨지더라도 단면이 뭉툭해 위험성이 적다. 또한 상대적으로 가공이 쉽다. PMMA는 결정도에 따라 투명도를 조절할 수 있다. 또 원료 단계에서 안료를 첨가해 색을 입히기도 한다. 주로 유리나 석재를 모사하는 용도로 쓰이고 여러 장점 덕에 기존의 재료로는 불가능했던 성능을 구현할 수 있다. 아크릴은 빛 투과율과 굴절률이 높아 렌즈디스크 등 광학 부품으로 사용한다. 색과 광택이 아름답고 내후성이 우수하다. 또한 가열, 인쇄 등의 가공이 쉬워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단, 기름과 같은 유기용제와 접촉하면 균열이 발생할 수 있다. 아크릴은 가구나 간판뿐 아니라 건축의 외장재로도 많이 사용된다.

아크릴은 생산 방식에 따라 ‘캐스팅 제품’과 ‘압출 제품’으로 나뉜다. 캐스팅은 거푸집에 콘크리트를 채우듯 유리판 사이에 원료를 채우고, 수조에 넣은 다음 경화해 만든다. 오랜 시간 동안 굳혀 힘이 가해져도 균열이 적고, 평활도가 높다. 캐스팅 방향에 따라 수평과 수직으로 나뉘고, 국내에서는 대부분 설비가 저렴한 수직 방식으로 제작한다. 압출 제품은 두 개의 롤러 사이에 두꺼운 아크릴을 통과시켜 얇게 만든 판재다. 두께의 편차가 거의 없고 투명도가 높다. 하지만 내열성이 약하다. 국내에서는 대부분 1,200×2,400mm 규격의 단판으로 제작하고 3mm, 5mm 두께의 제품을 많이 사용한다.

국내 아크릴 원료 산업의 변화

을지로나 종로와 같은 시내엔 대개 1,200ⅹ2,400mm 크기의 단판을 잘라서 단순 가공하는 업체가 모여있다. 또한 이 업체들은 경기도나 시내 외곽에 있는 원판업체에서 가져오는데, 아크릴의 원재료인 MMA를 생산하는 방법은 대형 시설이 필요한 기반 산업 성격의 중화학공업으로 국내에선 역사가 길지 않다. 1990년대부터 LG화학나 롯데케미컬이 주로 생산하고 있고 그 이전에는 일본 등에서 원판을 수입해 사용하거나 재생 아크릴을 수입해서 가공했다. 중부아크릴 이길중 대표는 “원래 원재료는 수입품을 들여왔는데 예전에는 일본에서 쓰레기로 버리는 아크릴 폐기물을 가져다가 재생아크릴을 썼다. 지금은 중국 공장에서 그걸 많이 한다. 거기서 가져온 폐기물을 그냥 팔기도 하고 돈을 벌기도 했다”고 회고한다.

아크릴, 즉 PMMA (Poly Methyl Metacrylate)의 원료가 되는 메타크릴산메틸(Methtyl Metacrylate)은, 건자재, 페인트, 접착제와 첨가제 등 다양한 용도로 폭넓게 활용된다. MMA는 수익성이 매우 높은 사업으로서 선진국에서 기술 이전을 기피했다. 1996년 7월 롯데케미칼이 MMA 사업을 추진할 당시, 국내 시장엔 LGMMA가 1993년부터 가동에 들어간 연산 5만 톤 공장 하나뿐이었다. 따라서 국내 수요의 상당량을 수입에 의존했다. 당시 세계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던 MMA 제조공법은 ACH(Acetone Cyanohydrin) 공법으로 독극물과 강산(强酸)의 취급으로 투자비가 많이 들고 환경적 측면에서 취약했다. 후발주자인 롯데케미칼은 파트너였던 미쓰이화학을 설득해 1997년 5월 미쓰이화학, 쿠라레이와 기술도입 계약을 체결했으나 IMF 외환위기 여파로 프로젝트가 중단됐다. 우여곡절 끝에 2001년 2월 연산 4만 톤 공장을 준공해, 같은 해 5월 상업생산을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 관련 산업의 발전으로 MMA와 PMMA의 수요가 많이 증가했지만, 당시 국내는 2개 사만 생산했다. MMA와 PMMA 사업 분야에서 세계 1위 기업인 미쓰비시레이온은 우수한 품질과 기술을 자랑하고 있었고, 나프타 분해 공장(NCC)을 보유하고 있는 롯데케미칼은 원료 공급에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양사는 2006년 8월 50대 50의 지분으로 합작 법인 대산MMA를 만들었다. 2009년 2월 대산MMA 공장은 준공하고 그해 5월 양산에 돌입해 연산 9만 톤을 생산 중이고, 2008년 9월 여수 PMMA 공장을 완공해 연간 4만 톤을 생산한다.

국내 아크릴 생산품의 변화

아크릴 제작품은 광고 산업과도 관련이 깊다. 국내 아크릴 산업이 1990년대 초반부터 급격히 성장했는데, 아크릴 자체가 본격적으로 국내에서 생산된 시점이기도 하지만, 88서울올림픽 이후 광고나 홍보 시장이 본격적으로 성장한 시점과도 그 연관성을 찾을 수 있다. 흥왕아크릴의 김경희 실장은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아크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1990년대에 본격적으로 수요가 늘면서부터”라고 설명한다. 또한 투명하다는 장점으로 아크릴은 공과뿐 아니라 상업공간의 활성화와 그 맥락을 같이한다. 1990년대 말 경제고도 성장으로 소비가 늘고 상업공간이 크게 늘면서 아크릴 산업이 호황이었고, 2006년엔 정부 지침으로 LED 간판으로 대거 바뀌면서 활황이었다.

특히 아크릴로 제막하는 주 제품인 간판의 경우 아크릴 입면체 내부에 LED를 삽입해 만드는데, 2006년 정부에서 지역의 색을 살리기 위한 간판개선 사업으로 LED를 이용한 입체 간판을 내세우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불투명해서 빛을 투과하는 면적이 제한적인 알루미늄 간판과 달리 아크릴은 면 전체가 발광하여 입체 간판으로 안성맞춤이다. 또 재단이 쉬워 다양한 형태를 만드는데 용이하다. 가구 아크릴은 투명하고 깨질 염려가 적어 테이블, 의자 등 가구재로 적합하다. 흠집이 쉽게 생기는 단점이 있지만 표면을 하드 코팅하는 방식으로 보완이 가능하다.

을지로와 아크릴 가공 공장

앞에서 언급한 대로 국내에서 아크릴의 원료인 MMA를 만드는 기업은 3곳 정도다. 이 원료를 받아서 원판을 만드는 회사는 국내 50개 정도다. 한들플라텍, 청구산업, 금산, 영일 등이 있고 이 중에서 한들이 기술력이 높은 원판 업체로 꼽힌다. 수도권 일대에선 경기도 포천시에 광릉 수목원 일대에 제조 허가가 나있어 이곳에서 원판을 생산한다. 을지로 일대에선 이런 원료를 가져오거나 수입한 재생아크릴 녹여 파이프나 봉제를 만드는 곳으로 대표적으로 종로아크릴(http://jonglo.co.kr)과 일성아크릴(http://ilsungac.co.kr) 두 군데 정도가 있다. 을지로 일대에 가공 업체는 100개 정도로 이는 간판과 스카시 업체 모두 포함한 규모다. 아크릴 가공은 크게 판을 자르는 ‘재단’과 색을 입히는 ‘채색’, 부재를 접합하는 ‘조립’으로 나눈다. 재단은 CNC, 레이저, 표면을 다듬는 밀링으로 나눈다. 대부분의 합성수지는 재단에서 가공이 끝난다. 반면 아크릴은 조립하거나 채색하는 식으로 2차 가공한다. 채색과 조립은 가공 제품에 따라 순서가 달라진다.

인쇄업과 아크릴 가공 공장

을지로/청계천 일대에 아크릴 상점이 밀집해 형성된 배경을 설명하는데, 아크릴보단 인쇄업에 관해 먼저 살펴봐야 한다. 둘 사이엔 긴밀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을지로에는 전통적으로 일반 인쇄공장이 많고 방산시장에는 특수인쇄공장이 많다. 을지로에 종이인쇄 관련 업종이 많이 몰려 있다면, 방산시장에는 특수인쇄 즉 아크릴, 에폭시 등 거칠고 냄새가 많이 나는 특수 재료들과 화공약품, 특수원단을 사용하는 광고, 인쇄 관련 업체들이 많다. 아크릴은 종이와 마찬가지로 가공이 쉽고 아크릴 원판 위에 인쇄가 쉬워 광고물이나 홍보물에 많이 사용되기 때문에 인쇄업과 함께 발달했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동네 종로구와 중구는 서울이 본격적으로 기틀을 잡아가던 이전부터 많은 학자와 문인의 고향으로, 인쇄/출판업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서울의 주요 출판사들은 세운 지역 서쪽에 자리 잡았다. 이런 전통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친 이후에도 이어졌다. 민주화 이전 출판업은 정부 검열로 제약을 많이 받았지만, 6월 항쟁으로 인한 1987년 체제 변화는 출판물의 폭발적 증가, 특히 소규모 회사 또는 가족 기업형 출판사에 의한 출판물 증가로 이어졌다.

한편, 시대에 뒤처진 출판 유통 체계를 개선하기 위해 1989년 서울의 위성도시 파주에 출판단지를 세웠고, 현재 200여 개 출판사에 1만 명 이상이 종사하고 있다. 파주출판단지 다음으로 출판업이 많은 지역이 세운상가고 그다음이 성수동 지역인데, 성수동 지역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출판 인쇄 클러스터가 점차 해체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종로의 중심 업무 지구가 변하기 시작하면서 업무용 고층 빌딩과 대규모 재생 프로젝트들이 제조업과 소규모 산업체들을 서울 바깥 또는 동쪽으로 밀어내고 있다. 이런 업무 공간의 증가는 한편 새로운 인쇄물 시장을 창출했는데, 첫째, 단행본 인쇄에서 기업 활동과 더 관계가 깊은 브로슈어, 보고서, 달력, 업무일지, 홍보물 등의 인쇄물로 제품군이 바뀌었다. 둘째, 1990년대에 걸쳐 세운상가 지역에 새로운 클러스터와 네트워크가 생겨났다. 최근에는 인쇄 관련 서비스 회사들, 특히 광고와 마케팅 회사들이 이 지역에 자리 잡았다. 즉 순전히 인쇄에서 홍보물과 관련된 다양한 시장이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다.

을지로 아크릴 가공 업체의 현재

종로와 을지로 일대의 아크릴 가공 업체는 현재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아크릴 업계가 활황이던 1990년대는 종로부터 청계천 등지에 있었다. 매출이 크지 않고 영세하기 때문에 산업의 발전에 따라 여러 곳을 옮겨 다녔다. 이헌 대표는 “원래 종로 쪽에 흩어져 있었는데, 당시 국도빌딩과 서울극장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을지로3가의 남측 명보극장 일대로 몰렸다. 그러다 을지로 쪽에 은행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면서 가게들이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해 다시 6가 쪽으로 밀려났다”고 말한다. 그는 “현재는 종로3가, 서울극장, 양쪽으로 6개, 을지로3가 왼쪽, 명보극장 가는 길로 양쪽에 조금 남아 있는 정도”라고 말한다. 을지로 아크릴 가공 업체가 이렇게 많이 사라진 이유를 몇 가지로 분석해 본다.

  • 비기술집약적 산업: 아크릴은 촉감이 차가운 유리, 금속과 달리 피부와 이질감이 적고 부드럽다. 가공도 다른 재료보다 쉽다. 이런 장점이 결과적으로 아크릴 가공산업의 독약이 됐다. 시내엔 주로 소규모 업체들이 존재한다. 지금도 소규모로 3~5명 정도 가내수공업식으로 한다. 큰 기술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이길중 대표는 “알음알음 일을 배우고 이직하기 때문에 시장이 작아 이직이 어렵다. 그러다보니 형편없이 작은 업체들이 많이 생겼다. 거의 주먹구구식으로 했다”고 말한다. 실제로 을지로 아크릴 가공 업체를 찾는 이유는 복잡하고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이 아니라 주로 상업 공간에 필요한 가구나 진열대가 많다.
  • CNC, 레이저 커팅 기계의 보급: 10~15년 전부터 국산 CNC와 레이저커팅 기계가 본격적으로 보급되면서 어렵지 않게 누구나 할 수 있게 됐다. 우후죽순 격으로 생긴 이유다. 이길중 대표는 “사양 업종은 아닌데 많이 생겨서 자동화가 되었고 경쟁이 많아서 일거리가 줄고 있다”며 “한국 시장이 좁고 나눠먹기 식이다. 처음에는 아크릴로 많이 했지만 최근에는 포멕스로 많이 한다. 점점 마진이 적다”고 지적한다. 반대로 이렇게 컴퓨터를 이용해 가공 하다보니 30~40년 일한 장인들은 이런 기계를 다루지 못하기 때문에 적응하지 못했고, 컴퓨터 사용이 익숙한 젊은 세대는 특유의 냄새와 분진 등, 힘든 노동으로 기술을 배우지 않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 임대비와 인건비 상승: 모든 산업이 마찬가지지만, 임대비와 인건비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이헌 금강아크릴 대표는 “1994년도에 맨 처음 이곳에 나왔을 때 나이 많은 사장들이 많았고 나는 보조였다. 모두 기술이 있는 사장이었는데 지금 을지로에서는 5명 빼고는 모두 관뒀다. 자식들이 같이 하는 중부아크릴 같은 곳들만 남았다. 이 업계는 단순히 혼자서 하면 잘 못한다. 영업도 해야 하고 드로잉도 해야 하고 제작도 해야 하고 분업화가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기본적으로 을지로 일대의 입대료는 가파르게 상승했다. 최소한 공장이나 매장을 운영하기 위해 월 500~1,000만 원 정도 월세를 내야 하고, 기계 자체도 저렴하지 않다. 레이저는 보통 1억 5,000 만 원, CNC는 7,000~8,000만 원 선이다. 또한 부가가치 높은 일감이 줄고 있다.
  • 소규모 생산품과 유행을 타는 품목: 품목은 보통 ‘악세사리’, ‘실험기구’, ‘브랜드 집기’, ‘실사’, ‘간판’ 등으로 분류돼 있다. 생산품의 크기가 작고 생산 종목 자체가 주로 소비재로 그때그때 유행을 탄다. 이길중 대표는 “1990년대 말에 가장 돈을 많이 벌었다. 그 당시 만든 건 30cm 홍보용 자 같은 건데, 몇 만개 만들었다. 판촉물용 자도 그때 많이 만들었다”고 회고한다. 최근엔 판촉물 집기 등을 많이 만든다고 한다. 복잡한 가구나 제작품이 아니고 단순한 케이스류 같이 제작 공정이 단순한 제품이다. 이런 공장들은 품이 많이 안 들어가기 때문에 일은 많이 하지만 수익은 낮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산 종목 자체가 늘었다. 대량생산보다는 다품종 소량생산이 적합한 대응인데, 이렇게 하다보니 공장대신 더욱 현장 수작업에 의존할 수 밖에 없게 됐다.
  • 네트워크의 단절: 을지로와 종로와 같이 시내 중심부에 있는 곳은 접근성이 좋은 이유로 큰 대로변인 금강아크릴 같은 곳에서 손님을 받고 중부 아크릴 같은 공장이 있는 곳에서 일을 받아서 했던 구조였다. 그러나 단순 아크릴 가공이 수익성이 떨어지면서 이런 구조가 해체 됐다. 결국 규모의 경제를 이룬 업체들은 임대료 등이 저렴한 외각으로 이전했다. 하남시, 성수동, 일산으로 이전했다. 시내엔 결국 소규모 영세한 업체들이 많아졌다. 이헌 대표는 “요즘엔 다 인터넷으로 하니깐, 로드샵이 의미가 별로 없다”고 말한다. 또한 “을지로는 핏출처럼 다 연계돼 있는데 한쪽을 쳐내니깐 안되는 거다. 물건 하나가 여러가지가 필요하다. 모든 하드웨어가 들어간다. 한번에 일을 해서 싣고 들어가야 하는데 여기서 끊어지니깐 연결이 잘 안되는 거다”라고 지적한다. 실제 한 연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재 이곳은 주차와 화물 적재 공간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공간적 단점이다. 높은 임대료와 열악한 건물 환경, 적절하지 못한 업무 시설 또한 심각한 단점으로 꼽힌다. 비슷한 사업체가 자리한 대부분의 클러스터에서 정보 교환과 유관 산업체 간의 시너지는 항상 클러스터의 주요한 장점 중 하나지만, 현대 아크릴 산업은 이런 시너지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서로 필요하고 연계된 사업체가 가까이 있고, 원자재와 공급의 접근성이 좋아 맞춤형 제품 생산이 유연하고 용이하다는 것도 주요 장점이지만 아크릴 원판을 받아서 단순 가공하는 이 지역은 이미 그런 시너지를 누리기 어렵다.
  • 젊은피 수혈: 이헌 대표는 “가장 어려운 게 허리가 아프다. 10시간씩 앉아있으면 허리가 아프고 대부분 일하는 사람들이 허리와 무릎이 안좋다. 냄새와 먼지가 심하다. 폐가 안좋다. 단순일 같아 보이지만 기술적으로 머리를 써야 한다. 과거에는 단순히 아크릴 재단과 본딩 작업이지만, 지금은 도면을 다뤄야 하고 일러스트를 다뤄야 하고, 그 상태에서 CNC도 돌려야 하고, 레이저 돌리고, 조립도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아크릴은 최소 3명이 붙어야 한다. 영업도 하고, 레이저를 돌리려먼 별도의 일손이 필요하고 파일 가공도 따로 붙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직 소규모 생산방식을 벗어나지 못한 결과다.

 

[참고자료]

  1. 중부아크릴 인터뷰

 

중부아크릴은 1992년 설립돼 30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이에 대해 설명해 달라

창업전 종로의 국일관 뒤에서 상패 및 판촉물 제작을 하며 아크릴 가공 기술을 처음 배웠다. 그 당시엔 주변에 경쟁 업체들이 많아 조금 떨어진 을지로에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옮겨서 장사를 한 게 결과적으로 더 잘됐다. 상패와 달리 아크릴은 용도가 더 많아졌기 때문에 더 큰 돈을 벌 수 있었다. 창업 당시만해도 아크릴(가공) 업체는 시내 중심가에 10개 미만이었다. 덕분에 초창기는 소규모였음에도 수요가 많아 돈벌이가 잘 됐다. 그래서 점차 주변에 경쟁이 많아진 거다. 가족, 친척, 아들 모두 동원됐다. 그러나 아크릴 업체가 중소기업 이상으로 큰 회사가 없다. 지금도 소규모로 5~10명 정도 가내수공업식으로 한다. 큰 기술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알음알음으로 일을 배우고 이직하기 때문에 시장이 작아 이직이 어렵다. 그러다 보니 형편없이 작은 업체들이 많이 생겼다. 거의 주먹구구식으로 했다. 게다가 20년 전 CNC와 레이저커팅이 나온 다음엔 누구나 할 수 있게 됐다. 맨 처음 외국산 CNC 기계를 중고로 들여왔다. 중부아크릴이 을지로에서 처음으로 일본산 48(원장 가공이 가능한)기계를 가져와서 했다. 그러다 국산 CNC가 보급되기 시작한 건 15년 전 즘이다. 지금도 기계가 고가긴 하다. 레이저는 1억 5,000, CNC는 7,000~8,000만원이다. 우리 공장엔 레이저는 한대, CNC머신은 2대가 있다. 그래서 타산이 안 맞는다, 그런 기계를 넣으려면 넓은 장소가 필요한데 타산이 안 맞다. 게다가 임대비와 인건비도 문제다.

시대를 거쳐오면서 주로 생산하던 제품에 어떤 변화가 있어왔나?

주력 제작하는 품목은 화장품 진열대, 약국 진열대, 브랜드 전시회 할 때, 아웃도어 업체 진열대다. 창업 초장기엔 원시적이었다. 다 손으로 했다. 목공, 스카시(컷팅) 모두 톱날로 했다. 맨 처음에는 실내조명커버, 시계 커버 등의 제품을 만들었다. 최근엔 레이저로 한다. 초창기에 했기 때문에 이런 원시적인 업체가 소규모로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 수입이 괜찮았다. 그때 우르르 벌떼처럼 달려들어 군소업체들이 많이 생겼다. 사양 업종은 아닌데 많이 생겨서 자동화가 되었고 경쟁이 많아서 일거리가 줄고 있다. 한국 시장이 좁다. 나눠먹기식이다. 처음에는 아크릴로 많이 했지만 최근에는 포멕스로 많이 한다. 점점 마진이 적다. 실내 간판은 일부 하지만, 외부 간판은 간판 전문 업체서 한다. 시공업체가 따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크릴은 재단(CNC, 레이저, 밀링) 채색, 조립의 과정으로 가공한다. 이 단계에서 중부아크릴의 강점과 장점은 무엇인가?

우린 자가 건물이라 괜찮다. 안 그러면 월 500~1,000만 원정도 세를 내야 하는데 버틸 수 없다. 우리는 기계를 여러 대 갖추고 한다. 아들이 45살인데 여기서 일한 지 15년 됐다. 중대 사진학과 출신이다. 젊은 친구가 있으니 경쟁력이 있다. 캐드나 도면으로 되어 있고 도면을 수정을 해야 하는데 그런 게 필요하다. 레이저2대(동부하이텍), CNC1대다. 국내꺼 중에선 가장 많이 깔려 있다. 요새 무기포접착제를 기술로 하는 데가 있다. 우리도 그렇게 한다. 넓은 건 어렵다. 그건 접착제로 하는게 아니라 원액으로 하는 거라 가격도 비싸다. 그쪽으로 보내서 한다. 현재 우리 공장은 인원이 7명인데 일대에선 가장 크다. 납기일도 빠르고 맞출 수 있다. 작업장이 두곳인데, 처음에 시작한 곳이 있다. 거기도 작업장이 100(지하와 1층), 전체가 90평 (총 100평이다) 총 200평 가까이 된다.

주로 한들플라텍과 같은 1,200ⅹ2,400mm 크기의 단판업체의 아크릴을 공급받아 가공한다. 중부아크릴은 어떤가?

원래 원재료는 수입품을 들여왔다. 예전에는 일본에서 쓰레기로 버리는 아크릴 폐기물을 가져다가 재생아크릴을 썼다. 지금은 중국공장에서 그걸 많이 한다. 거기서 가져온 폐기물을 그냥 팔기도 하고 돈을 벌기도 했다. 원판 만드는 공장은 경기도 외각에 별도로 있다. 국내는 시장이 좁다. 큰 업체가 필요 없다. 원판업체는 청구산업, 한들플라텍, 금산, 영일 등 몇 개가 있다. 청구산업에서 주로 가져오는데, 청구는 주로 캐스팅 원판을 가져온다. 아크릴 마다 다른 용도가 있다. 청구산업은 그렇게 오래 안됐다. 아크릴 원판 제조업체에서 자립을 한 거다. 현장에서는 사이즈 별로 분리한다. 캐스팅 아크릴은 대부분 일반적인 용도다. 압출은 두께가 일정해서 특별한 용도에 쓴다. 프린팅 실사 할 때 접착을 하면 캐스팅 판은 기포가 생긴다, 그래서 압출판을 쓴다. 압출판은 많이 쓰고 그럴 때 사용한다. 압출이 약간 더 비싸다.

을지로 아크릴산업의 단점은 골목이 좁고, 창고가 부족하며 낡고 오래됐고 재개발의 위협이 있는 것이 단점으로 보인다. 을지로 아크릴 산업의 현주소에서 장단점은 무엇인가?

앞으로 아크릴업체가 어려워지긴 하겠지만, 사라지지는 않을 거다. 규모가 크면 큰 만큼 에로 사항이 많다. 기본적으로 임대료나 기계, 인건비가 많이 나간다. 부가가치 높은 일감이 줄고 있다.

투명하다는 장점으로 아크릴은 상업공간의 활성화와 그 맥락을 같이한다. 1990년대 말 경제고도 성장으로 소비가 늘고 상업공간이 크게 늘면서 아크릴 산업이 호황이었고, 2006년엔 정부지침으로 LED간판으로 대거 바뀌면서 활황이었다고 알고 있다. 반면 최근엔 코로나19로 아크릴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 향후 아크릴 시장을 어떻게 보나?

1990년대 말에 가장 돈을 많이 벌었다. 그 당시 만든 건 30cm 홍보용 자 같은 건데, 몇 만개 만들었다. 판촉물용 자도 그때 많이 만들었다. 최근엔 아큐브 같은 렌즈업체에서 신제품 나오면 판촉물, 팝업 홍보물을 만드는데 주문이 많다. 다이슨 국내 매장 만들때 홍보물 설치물, 만드는 걸로 했다. 그리고 번동에 있는 미국으로 수출하는 전자 업체가 있는데, 거기서 주문한 케이스가 있다. 최근 코로나 때문에 칸막이 수요는 많은데, 제작 공정이 너무 단순하다. 우리같은 가공회사는 남는게 없다. 즉 원판 공장 좋은 일만 시킨다. 우리는 품이 많이 안 들어가기 때문에 일은 많이 했지만, 이문은 낮아졌다.

 

  1. 금강아크릴(이헌 대표)

 

금강아크릴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26년 기술을 가지고 있다. 금강아크릴은 1988년도에 세워졌다. 지금 48세인데, 아버지가 운영하던 가게에 20살때 부터인 1994년부터 가게를 나오기 시작했다. 금강아크릴은 처음엔 청계천쪽에 있는 브라더빌딩(주교동) 인근에 있었는데, 1998년 이곳으로 이사 왔고 2000년경에 가게를 이어받았다. 맨 처음엔 아크릴 자르고 붙이는 단순 작업이 많았다. 그러다 2010년 레이저커터와 CNC가 들어오면서 고급 가공이 가능하게 됐다. 최근엔 코로나 판이나 스카시가 주 종목이다. 1994년도에 맨 처음 나왔을 때 나이 많은 사장들이 많았고, 나는 보조였다. 모두 기술이 있는 사장이었는데 지금 을지로에서는 5명 빼고는 모두 관뒀다. 자식들이 같이 하는 중부아크릴 같은 곳들만 남았다. 이 업계는 단순히 혼자서 하면 잘 못한다. 영업도 해야 하고 드로잉도 해야 하고 제작도 해야 하고 분업화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왜 아크릴은 혼자 하기 어렵고 영세한 곳이 많은가?

생산품이 규모가 작고 생산 종목 자체가 소비재로 유행을 탄다. 그게 문제다. 종목은 보통 악세사리, 실험기구, 브랜드 팝업, 실사, 집기, 간판 등으로 분류돼 있다. 금강 아크릴은 이것 저것 하는게 아니라 종합이다. 진짜 기술이 좋은 데는 모두 변두리에 있다. 하남시, 성수동, 일산으로 갔다. 시내엔 모두 작다. 과거에는 뜨내기 손님이 많았는데, 요즘엔 다 인터넷으로 하니깐, 매장이 의미가 별로 없다. 이 가게는 우리 꺼다. 그러나 임대사업자는 아니다. 수익이 크게 없어 직원없이 혼자다. 가장 어려운 게, 허리가 아프다. 10시간씩 앉아있으면 허리가 아프다. 대부분 일하는 사람들이 허리와 무릎이 안좋다. 냄새와 먼지가 심하다. 폐가 안좋다. 단순일 같아 보이지만 기술적으로 머리를 써야 한다. 과거에는 단순히 아크릴 재단과 본딩 작업이지만, 지금은 도면을 다뤄야 하고 일러스트를 다뤄야 하고, 그 상태에서 CNC도 돌려야 하고, 레이저 돌리고, 조립도 해야 한다. 그리고 생산 종목 자체가 늘었다. 레이저 돌리려먼 일손이 필요하다. 3명이 붙어야 한다. 파일도 따로 붙어야 한다. 과거보다 인원이 더 많이 붙어야 한다. 나 같은 경우 야간대학을 다녀서 공부를 했다. 대충 알고 있는 상태에서 실수나 그런 게 많다. 직접하니깐, 속도가 빠르다. 대응이 빠르다.

아크릴 업체들이 을지로에 모여있는 이유가 있나?

을지로 2가부터 4가까지 대로변에 몇몇 있었는데 원래 청계천 인근에 많았다. 아크릴가게들이 매출이 크지 않고 영세하기 때문에 산업의 발전에 따라 여러 곳을 옮겨 다녔다. 원래 종로쪽에 뿔뿔이 흩어져 있었는데, 당시 국도빌딩과 서울극장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을지로3가의 남측 명보극장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그쪽으로 몰렸다. 당시엔 철공이랑 칠, 부식, 명판, 실크인쇄공장이 많았다. 그러다 을지로쪽에 은행건물들이 많이 들어서면서 가게들이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해 다시 6가쪽으로 밀려났다. 현재는 종로3가, 서울극장, 양쪽으로 6개, 을지로3가 왼쪽편, 명보극장 가는길로 양사이드 몰렸다. 고려아크릴 뒤와 건너편에 조금 있다.

젊은 사람들이 왜 안 배우려고 할까?

자르고 조립하는 기술이 힘들다. 큰 공장 가면 그걸 해야 한다. 재단이나 그런 게 가장 어렵다. 냄새 난다. 그게 가장 어렵다. 예전에는 기술을 배우려고 참고 했다. 내 나이 때는 별로 없다. 50대가 없다. 허리가 없다. 30~40대는 조금 있다. 컴퓨터와 레이저를 배웠기 때문이다. 레이저는 40%도 안된다. 앞으로 좀 늘겠지만, 아크릴 집은 기본적으로 자르고 만드는게 더 메인이다. 레이저로 자르고 박스 짜는거는 외부에서 할 수 없다. 돈이 안남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지금은 많이 관뒀다.

주변과의 네트워크는?

아크릴 모임이 있긴 하다. 단합이 잘 안된다. 경쟁이 있어서 그렇다. 판 공장은 서로 다 그 사이를 안다. 주변에선 미광아크릴과 금호아크릴 다 친하다. 이들은 기술이 좋다. 기술이 좋다는 것은 어떤 일이 들어와도 다 소화할 수 있고, 장비가 잘 되어 있는 곳이다. 다이어커팅부터 앤쇄 CNC, 오래된 가게들이 많다. 일성아크릴도 있다.

요새는 하청 공장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어졌다. 남길수도 없고, 소비자도 줄었다. 작은 데라도 기계를 들여놔야 한다. 여기는 모두 다 오래한 사람들이라 떠나기 쉽지 않다.

주로 원판은 어느 업체에서 가져오나?

우린 한들플라텍에서 가져온다. 케미판을 많이 쓴다. 투명도가 좋다. 우린 캐스팅 제품을 많이 쓴다. 압출은 단점이 있다. 면을 자르고 해도 깨끗하게 하지 않는다. 오래 두면 휜다. 캐스팅은 열처리를 해서 더 단단하다. 압출은 비싸서 잘 안한다. 일반 캐스팅 공장은 압출을 잘 안 뽑는다.

옛날에는 판 자체가 소매가 많아서 판을 많이 갖다 놨지만, 이젠 소매가 별로 없다. 지금은 하루에 2번 필요한 양만큼 받는다. 3년전부터 소매가 잘 안됐다. 도로변에 사람이 많이 사라졌다. 을지로는 핏출처럼 다 연계돼 있는데 한쪽을 쳐내니깐 안되는 거다. 물건 하나가 여러가지가 필요하다. 모든 하드웨어가 들어간다. 한번에 일을 해서 싣고 들어가야 하는데 여기서 끊어지니깐 연결이 잘 안되는 거다. 그래서 큰 공장만 살아 남는 거다. 큰 공장도 리스크가 커지기 때문에 망하는 경우도 많다.

 

에디터 심영규

심영규는 주식회사 정음과 건축기획사 프로젝트데이 대표로 건축재료를 소개하는 <감(GARM)>매거진과 <아는동네> 매거진을 기획했고 편집장을 맡았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설계 대신 일간지와 건축전문지에서 기자로 일하며 건축 콘텐츠를 제작했다. 현재는 사회 변동성에 민감한 오프라인 공간에 지속가능성을 만드는 컨설팅을 하고 있으며 지역의 자원을 분석해 콘텐츠를 발굴하고 로컬 플레이어를 양성하며 이들을 위한 단계별, 또한 다양한 기능이 복합된 하이브리드 공간을 만들고 있다. 이는 사회 변동성에 대응해 유연하며 리스크를 줄이는 운영 방식으로 특히 연희동에 정음철물 등 현장 운영을 통해 얻은 인사이트를 기반으로 아이디어를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