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거리

인터뷰홍인전자 장은진

 

세운상가 559호 ‘홍인전자’는 청소년과 청년이 무척이나 자주 찾는, 상가에서 보기 드문 상점이다. 매주 일요일마다 무료로 전자과학을 배우러 오는 아이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발명가의 작업실 느낌이 물씬 드는 묘한 푸름 불빛의 입구를 지나, 키트가 들어 있는 상자들이 가득한 사무실로 들어섰다.  오랜 세월 꾸준히 한 길을 걸어온 덕에 홍인전자 안에는 세기도 힘든 숫자의 특허증이 잔뜩 보였다.


대강 둘러봐도 신기한 것들이 참 많아요.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희는 홍인전자구요, 주로 학생들의 전자과학 실험 제품을 제작하고 판매하고 유통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라디오를 만드는 키트, 새소리가 나는 키트 같은 것들을 직접 만들어 판매해요. 보통 초, 중, 고, 대학교를 대상으로 하지요.

학교에서만 저희의 키트들을 가져가는 게 아니고, 전자과학에 관심이 있는 아이들에게 개인적으로 사다 주시는 학부모님들도 많아요. 초등학교 학생들은 전자과학이라고 하면 되게 어렵게 생각하잖아요. 이런 키트를 통해서 어렵지 않게 원리를 알게 되는 계기가 되는 거죠. 저희는 부품의 가짓수가 거의 1,000여 가지가 돼요. 회로도나 설명서도 저희가 직접 만드는데 학생들은 그 부품들과 회로도, 설명서로 납땜을 하고 조립을 합니다.

학생들이 직접 납땜을 할 수가 있나요?

학생들이 AM/FM 라디오도 다 직접 만들 수 있어요. 이건 라디오 키트인데요, 이걸로 직접 만든 건데 소리도 좋아요. 선명하게 잘 나와요. 그러니까, ‘내가 만들어 내가 쓴다.’ 이런 개념이에요. 직접 납땜을 하는 게 어렵다고 생각되면 ‘브레드보드’에 조립을 해보는 것도 좋아요. 브레드보드는 납땜할 필요 없이 뺐다가 꼈다가 여러 번 조립하면서 수천 가지의 것들을 실험해볼 수 있거든요. 저희가 만든 책 <브레드보드 길라잡이> 1,2,3,4에 들어있는 전부를 해볼 수 있는 거지요. 책에 있는 회로를 보고 보드에 꽂아볼 수도 있고, 납땜용으로도 할 수 있고.

직접 책을 출판하신 거예요?

네, 저희가 직접 다 제작하고 만들어요. 

홍인전자는 세운에서 자리 잡은 지 얼마나 됐나요?

이제 한 40년 됐죠. 제가 대표로 있게 된 지는 얼마 안 됐지만요. 저는 이곳 물건을 가져다 팔고 하다가 정착하게 됐죠. 저희 사장님은 현재 파킨슨병이 있으셔서 사무실에 나오진 못하세요. 그래도 여전히 개발은 하고 계시죠. 그분은 평생 전자 쪽만 해오셨어요. 저희 회사는 그동안 어디에 크게 홍보를 하진 않았어요. 되면 되는대로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그저 꾸준하게, 조용하게 하다 보니 30~40년 동안 하게 된 것 같아요.

전자 쪽도 분야가 매우 다양한데, 실험용 키트를 취급하게 된 이유는 뭘까요?

저희 사장님이 예전에는 오락기를 취급하셨대요. 한창 오락기가 성행일 때요. 그런데 그쪽에 하도 사기꾼이 많아 보니까 다른 걸 알아보다 키트의 길로 들어서신 거예요. 그땐 아이들이 전자과학을 배우고 싶어도 우리나라에 이런 키트가 별로 없었거든요. 그때부터 사장님이 일본, 미국, 캐나다를 돌아다니시면서 배우고 연구한 것들로 키트를 만들기 시작한 거죠. 그런데 매번 다른 키판을 떠서 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조립 형태로 할 수 있는 브레드 보드를 만드신 거죠. 꽂았다가 떼었다가 할 수 있으니까 실험할 수 있고 저희 홈페이지 들어가 보면 이 보드도 종류가 다양해요. 

활발하게 홍보를 하진 않는다고 하셨는데 개인적인 손님들은 어떻게 오시는 건가요?

저희는 일요일에 오전 열시부터 오후 세시까지 저희 작업장에서 무료 교육을 진행하고 있거든요. 저희 홍인전자의 키트로 만들든, 브레드보드를 활용하든, 납땜을 하던 저희 모두 무료로 가르치고 있어요. 몇 십 년을 그렇게 해왔죠. 저희가 직접 촬영한 교육 영상도 사이트에 올리고 있고요. 여기서 배워간 아이들이 과학 영재 고등학교에 4명이나 수시입학을 했어요. 시에서 이런저런 상도 잘들 탔고요. 얼마 전엔 저희가 교육하는 모습을 SBS에서 취재도 했어요.

신청은 어떻게 받아서 하나요?

신청은 따로 없어요. 그 주 금요일까지 전화를 주시면 저희가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일요일에 오시라고 그래요. 그래서 일요일에 오게 되면 제일 기초부터 배우는 거예요.

조금이라도 흥미와 재능이 있는 친구들이 이곳을 찾는 건가요?

아니요. 아예 아무것도 모르는 친구들도 많이 와요. 처음 왔을 땐 아주 왕초보였던 애들이 조금씩 배워가면서 높은 난이도를 익혀가고, 배운 걸 자기만의 아이디어에 접목시켜서 개발도 하면서 창의성을 쌓아가는 거죠. 저번에 어떤 어머님은 ‘우리 애가 여기서 배운 덕분에 영재고에 입학했어요. 이쁜 건 같이 나눠요’ 하시면서 전화하셨더라고요. 그럴 땐 저희도 참 감사하고 좋지요.

무료로 아이들을 교육하시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아이들이 학원에서 전자 과학을 배우려면 너무 비싸요. 학원은 한 달에 몇 십만 원씩 한다고 하더라고요. 또 일주일에 한 시간 반이나 두 시간 정도밖에 배우지를 못한대요. 그런데 보시다시피 설명서만 쭉 읽어봐도 한 시간은 뚝딱 지나가거든요. 애들이 뭘 하겠어요. 조금밖에 못 해보고 그냥 집에 가는 거죠. 어떤 아이는 학원을 3년 동안 나가도 할 줄 아는 게 없다가 저희 작업실에 와서 감을 익혔어요. 이곳은 한번 오면 오랫동안 실컷 배워갈 수 있기 때문에 만든 것을 동작가지 시켜보고 돌아갈 수 있어요, 자주 시간 내는 게 어려우니 한번 왔을 때 많이 배워가라는 거예요.

그러면 엄마 아빠도 앉아서 같이 배워요. 집에 가서 부모님이 아이를 알려주실 수 있게요. 그런데 어떤 어머님 중에서는 아이들이 전자과학에 흥미가 없는데도, 억지로 끌고 오는 분들도 계세요. 그런 건 저희도 싫어요. 저희가 돈을 받고 가르친다면 그런 분들도 대충 돈 받고 가르치면 되지만... 그런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그런 어머님들껜 말씀드려요. 아이에게 다른 적성을 찾게 해보면 어떻겠느냐고요.

 

청년들이나 어른들도 찾아오곤 하나요?

대학생들이 오죠. 학교에서 과제를 내줬는데 잘 모르겠다면서 저희한테 해달라고 그래요. 그 친구들 납땜도 잘 못해요(웃음). 솔직히 여기 다니는 초등학생들보다도 더 못해요. 작품으로 한두 개 하고 끝낸다고 하더라고요. 제 생각에 과학 분야가 너무 어수선한 것 같아요. 체계적으로 밑에서부터 시작을 해야 하는데, 그게 아니고 과제용으로, 졸업장을 위해 하는 것 같아서 좀 아쉬워요. 여기 세운에는 심지어 졸업 작품을 대신 만들어주는 곳도 있잖아요. 저희는 졸업 작품은 안 해요. 그냥 기초부터 원리를 알고 싶다는 친구들을 도와주고 싶어요.

사실 사람들이 많이 와도, 안 와도 부담이에요. 어떨 대는 여러 사람이 같이 와서 배워주면 좋겠다 싶을 때도 있어요. 어쩌다가 한 사람이 올 때도 우리는 두 사람이 나와야 하니까. 불 켜야죠, 난방 다 때줘야죠, 가르쳐줘야죠. 마이너스래도 엄청 마이너스죠. 평일에는 일하고 일요일에는 진짜 쉬고 싶은데 집에 할 일도 많고 그런데...

가르치는 일은 몇 년 정도 하신 거예요?

제가 하기 전에도 부장님들이 했는데 그것도 이제는 한 삼심 년 된 것 같아요. 옛날에는 통행금지 있을 때, 일요일이면 오심 대 초반 후반 되는 분들도 가방을 싸가지고 와서 저희 가게 복도에서 납땜하고 그랬대요. 그러다가 통행금지 시간에 걸려가지고 못 나가고 여기서 밤새고 이런 사람도 많았대요(웃음). 그때 오신 분들 중에서 지금까지 홍인전자 하냐고 반가워하시면서 오시는 분도 많아요.

그 풍경이 정말 인상적이었을 것 같아요.

맞아요. 몇 년 전만 해도 브레드보드 전국대회가 있을 때 마다 사람들이 여기다 돗자리를 펴놓고 앉아서 납땜질을 했어요.

그런데 이명박 정권 시기부터 4대강이니 뭐니 하면서 전자과학 쪽 예산이 점점 줄더니 전국대회가 아예 없어져 버렸더라고요. 실과 과목에도 빠져버렸고요. 관련한 재단에 전화 해봐도 이젠 그냥 아두이노만 한 대요. 거기서 아두이노를 애들 수준에서 가르쳐 줄 수 있는 건 긴 다리-플러스, 짧은 다리-마이너스 이런 것밖에 없어요. 애들이 기초부터, 저항부터 배운 다음 나중에 그런 것을 해야지 지금부터 그걸 배우는 게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정부정책이 그래서... 초등학교 때부터 아두이노를 한 대요. 기초 없이 겉핥기만 하는 거죠.

둘러보면 한눈에 봐도 개발하신 재품이 많이 보여요. 발명가의 작업실 같습니다.

저희는 특허만 76개에요. 그것도 너무 많아서 못 세어보고 있었는데 저번에 방송국에서 알려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주 오랜만에 다시 세어본 거죠. 출원을 한 것만 76개더라고요. 특허비만 1억도 넘게 들었어요.

그래도 이런 특허가 있으면 다른 업체에서 이걸 사용하면 반대로 돈을 받을 수도 있지 않나요?

저희 같은 경우는 저희가 물건을 개발해서 직접 판매를 하니까 다른 사람들이 무단 도용을 못하게 하기 위해서 특허를 내온 거죠.

개발도 하시고, 판매도 하시고, 교육도 하시고, 또 영상도 직접 만들어 올리시고...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시겠어요.

정말 정신없죠. 저까지 직원이 셋인데 아이들 가르치려 일요일가지 나오려니까 힘들죠. 너무 피곤해요. 어떤 날엔 너무 뻗어버리고 싶어요. 그런데 일이 많다 보니 쉴 새가 없네요. 요즘은 또 설명서를 좀 잘 만들고 싶어서 토요일엔 아홉 시부터 네 시까지 학원에서 일러스트를 배우고 있어요. 이 일러스트로 설명서 하나를 만드는 데 하루가 넘게 걸리더라고요.

항상 바쁘게 하루를 보내시는군요.

책 써야죠, 개발해야죠, 주문받아야죠, 판매해야죠, 서너 사람이 그 일을 다 하려니까 시간이 별로 없더라고요(웃음). 요즘은 또 어린 친구들이랑 이런 거 개발하고 있어요. 초등학생 애들이랑 하는 건데 이게 가로등이에요. 어두워지면 불이 들어오고 다시 밝아지면 불이 꺼지는 거예요. 이게 빛을 감지하는 센서에요. 

너무 귀여워요!

이건 또 거짓말 탐지기 비슷하게 만드는 건데, 사람이 거짓말을 하면 손에 땀이 나잖아요? 그걸 이용해서 이 셋서 부분에 손을 댔는데 물기가 있으면 삐 울리면서 빛이 들어와요. 이런 식으로, 아이들이 아직 이런 분야를 모르잖아요. 그런데 이런 거 만들고 하면 재밌어하죠(웃음).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일하고, 가르치고, 개발하시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은데 힘드실 것도 같아요. 그럼에도 일이 즐거우세요?

하기 싫으면 죽어도 못하죠. 이젠 못 먹고 살 정도도 아닌데, 재미있으니까 하는 것 같아요. 일요일에 아이들 가르치는 일도 돈 줘서 나오는 거라고 하면 안 나올 것 같아요. 피곤하면 ‘돈 안 받고 안 나갈래’ 할 것 같거든요. 그런데 돈 때문이 아니라 애들 가르치고 하는 게 보람 있고 하니까 계속 하는 거죠. 여행은 좀 가고 싶긴 해요. 한번은 양평 쪽을 갔다 온 적 있어요. 되게 짧게 다녀왔어도 나갔다 온 자체가 좋더라고요.

자녀분들은 함께 일하거나 하진 않으세요?

딸이 원래 함께 일했는데 얼마 전에 출산해서 지금은 좀 쉬고 있어요. 좀 지나면 다시 나와서 도와주고 할 거예요. 딸이 관리 같은 거 해주고 그러면 도움이 되죠.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전자과학이라고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가깝게 우리 주변에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어린 학생들도 진로를 정하기 어렵잖아요, 그럴 때 이런 걸해보고 실험도 해보고 하면 좋을 것 같아요. 부모님들도 그냥 학원만 보내지 말고 실제 활동을 해볼 수 있게 해주면 아이의 흥미도 확실히 달라요. 나라에서도 그런 장을 좀 더 만들어 줬으면 좋겠고, 적절한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출처 : <세운사람들>, 서울특별시 제작, 사단법인 공공네트워크(OO은대학) 발행

 

마이스터 장은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