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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중개세운, 제작지식을 얻는 가장 빠른 방법 ①

세운 기술중개인이자 메이커인 류승완이 말하는 스스로 만들어 쓰는 삶의 유익

글 박해란, 사진 류승완 제공 ⓒ세운협업지원센터



INTRO

인터넷 상거래가 발달하면서 필요한 물건을 사는 것은 점점 더 손쉬운 일이 되고 있다. 때문에 필요한 것을 만들어 쓴다는 생각은 많은 현대인들에게 어쩌면 생경할지 모른다. 그러나 세운일대에서 ‘직접 만들어 쓰기’는 낯선 활동이 아니다. 간단한 테이블이나 의자 정도는 만드는 게 더 빠르다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그런 동네, 바로세운이다.이번 세운맵 인터뷰 시리즈에서는 세운을 십분 활용해 직접 만들고, 고쳐 쓰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류승완 기술중개인을 만났다.   

Q. 어떤 일을 하시나요?

저는 세운기술중개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예술가들이나 창업자들이 무언가 만들거나 사려고 할 때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죠. 그래서 어디가면 뭘 판다를 알려주는 경우도 있고, 뭔가 만들려고 하면 어떤 식으로 접근하면 좋은 지 방법을 알려주기도 해요. 보통 스타트업 같은 경우에는 본인이 생각하는 물건의 스펙을 구체적으로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그러면 여기와서 견적을 받을 수가 없어요. 견적을 받을 수 있도록 스펙 혹은 기능을 특정하거나, 그러기 위해 필요한 질문들을 정리해주는 일을 하고 있죠.

Q. 어떻게 시작하시게 되셨나요?

원래는 사진 찍는 사람이었는데. 공대 나온 상업 사진가였죠. 카메라를 취미로 하다가 나중에는 업으로 하는  케이스가 많이 있죠. (웃음) 근데 사진을 찍으면서도 안 파는 물건은 만들어 쓰는 취미가 계속 있었거든요. 스피커도 만들고 오디오도 만들고. 11년도 부터는 저처럼 만드는 걸 좋아하는 소위 ‘메이커’ 분들과 교류도 하게 되었죠.

2012년에 한국에서 제1회 메이커 페어가 열렸는데 그 때부터 매년 참가해서 8회 까지 개근을 했습니다. 1회 때는 브로슈어 전용 스캐너를 만들었어요. 브로슈어는 책에 비해 접는 방식도 모양도 다양해서 일반 스캐너로는 스캔하기가 어려웠거든요. 아무튼 그런 식으로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2013년 창조경제가 정책기조가 되면서 메이커 문화가 많은 지원을 받게 됐어요. 그 때부터 메이커로서 제작활동을 넘어 멘토링, 심사, 자문 등 다양한 일을 해왔고요. 커리어와 인연이 연결돼서 여기까지 오게 됐습니다.

Q. 본래 만드는 걸 좋아하셨나요?

원래 유치원 다닐 때부터 온갖 것을 뜯었어요. 전축, 시계 등 어린이 입장에서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물건들을요. 많이 혼났습니다(웃음). 처음엔 그렇게 분해만 하다가, 초등학교 때부터 하나씩 쓸 만한 걸 만들기 시작했죠. 프라모델 속에 전구와 건전지를 넣어서 불이 들어오게 한다던지 그런 활동을 취미처럼 간간히 했어요. 이후로 본격적으로 만드는 활동을 해 온건 아니지만,  “할 수 있을 것 같으면 뭐하러 사? 내가 만들지!”라는 인식은 늘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Q. 그렇다면 뭔가 만들기 위해 세운에 처음 왔던 건 언제였나요?

95년도. 그 때가 대학교 1학년 때인데. 어댑터가 고장 나서 직접 만들려고 왔어요. 일제 CD플레이어 충전용 어탭터였는데, 회사이름은 정확히 기억이 안나요. 그 때는 어댑터를 쉽게 생각한 거죠. “이거 220V꼽으면 3V 나오면 돼 아무것도 아니잖아.” 라고 생각했던 거죠. 고등학교랑 대학교 1학년 때 변압기 같은 물리학 기초 배우잖아요. 그 내용 바탕으로 전압 바꾸는 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트랜스, 다이오드 등 재료를 사서 회로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전압 테스트를 했는데 3V가 나오더라고요. “아 됐다.” 라고 생각했는데 CD가 안 돌아 가는 거예요. 알고 봤더니 전압만 맞으면 되는 게 아니었던 거죠.

방법을 몰라 세운을 돌아다니면서 아저씨들한테 물었죠. 그러다가 회로 양단에 걸리는 부하의 크기와 관계 없이 일정한 전류가 흐르게 하는 정전류 회로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걸 ic칩으로 쉽게 구현할 수 있다는 것도요. 그래서 3V가 흐르게하려고 78XX시리즈 중 7803 칩을 샀어요. 알고 보니까 ic칩 표면을 갈아서 글자만 7803이라고 적어둔 리마킹 칩이었어요. 7803칩은 존재하지 않았던 거죠. 해서 선형 조정기(linear regulator)를 이용한 어댑터 만들기도 실패했어요.  그 다음엔 아예 처음부터 회로를 짜는 수밖에 없더라고요. 이렇게 좌충우돌을 겪은 끝에 한 3개월만에 성공을 했어요. 사실 3V 어댑터 살 수 있긴 했어요. “그걸 뭘 사 간단하게 만들면 되지!” 하고 쉽게 생각했던거죠. 그런데 전혀 안 쉬웠고, 고생했죠. 그래도 경험은 되게 좋았어요.

그런데 이런 과정을 학교에서 배우냐? 라고하면 안 배우거든요. 정전류 회로 이론은 배우는데 어떤 부품으로 어떻게 만든다는 교과서에서는 다루지 않죠. 또 정전류 회로에 대해 안다고 해도, ic 칩을 사서 만들면 된다던지, 리마킹 칩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던지 이런 세세한 부분은 사실상 공대 졸업해도 모르는 것이 보통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것들을 직접 부딪히면서 배울 수 있는 곳이 저한테 세운이었죠. 지금도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실용적 지식들을 얻어가고 있고요.

Q. 말씀하신 것처럼 작은 것도 만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그런데도 직접 만드시는 이유가 있나요?

기본적으로 공대를 졸업하면서 새긴 것 중에 “사람이 만든 건 사람이 고칠 수 있지.”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학교에서 아주 낮은 레벨의 4비트로 컴퓨터를 로직부터 시작 해서 자판기까지 되도록 설계하는 걸 배웠어요. 그걸 한 번 경험하고 나니 세상이 블랙박스로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스마트폰, 텔레비전 등 내가 일상적으로 쓰는 물건들의 작동원리를 이해하는 감각이 생기거든요. 제로베이스에서부터 세상에 없던 걸 만드는 접근 방법이 저에겐 익숙했어요. 고치는 것도 이런 측면에서 고치기로 마음먹으면 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뭔가 고장 났을 때 같은 값이면 사람을 부르기 보단 장비를 구입해서 직접 고쳤어요. 그렇게 장비가 하나 둘 늘다 보니 할 수 있는 게 점점 많아졌어요.

사실 내가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문제들이 해결 가능하다는 걸 먼저 인지해야,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어려움이 아닌 불편이라는 것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어요. “사람이 만든건 사람이 고칠 수 있어. 사람이 만든 건 나도 만들 수 있어.”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 그 때부터 많은 게 달라져요. 그 때부터 불편이 불편으로 인식이 되죠. 그리고 이것 저것 본 게 많으면 “이 불편을 이렇게 해결하면 되겠어.” 라는 욕구가 생겨요. 일상의 불편을 해결하는 것이 제 메이킹 활동의 원동력이었던 거죠. 그래서 브로슈어 스캐너를 만들게 됐고, 메이커 페어 2회 때는 할머니를 위한 새로운 형식의보청기를, 3회 때는 연애를 하던 시절의 기억으로 통화를 편하게 할 수 있도록 송수신 기능이 있는 베개를 만들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