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드 인 세운상가
80년대를 상징하는 곳, 세운상가 이야기를 연극으로
Q. <안녕하-세운> 독자들에게 연출님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종로에서 태어나서 40년 넘게 종로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에요. 200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희곡 <내 마음의 삼류극장> 이 당선되어 작가로 활동하다가 2011년 이후 <에어로빅 보이즈>, <헤비메탈 걸스> 등 직접 쓴 작품을 연출하면서 연출가로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고요. 2015년 서울연극제에서 선보인 <청춘, 간다> 는 대상을 비롯, 희곡상, 연기상, 무대미술상, 신인연기상 등 6개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작가에서 연출가로 영역을 넓힘과 동시에 어둡고 무거운 주제의 이야기를 탈피해 코미디 장르를 선택하면서 연극인생의 전환기를 맞고 있다고 할까요? 현재는 극단 명작옥수수밭 대표, 희곡뮤지컬작가학교 라푸푸서원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Q. 이번 연극 <메이드 인 세운상가>는 어떤 연극인가요?
<메이드 인 세운상가>는 우리 극단에서 2018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한국 근현대사 재조명 시리즈>의 하나로 87년 6월 민주 항쟁 직전인 1986년을 다루고 있어요. 1986년에는 북한이 금강산 댐을 만들어 한국을 수공한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던 때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이것이 금강산 댐의 위험을 부풀린 사기극이었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당시에는 많은 사람이 사실로 알고 있었거든요. 이 작품은 북한의 수공 위협에 처했다고 믿었던 세운상가 사람들이 북한의 수공에 맞서 잠수함을 만드는 것을 이야기의 큰 틀로 갖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이를 통해서 당시를 살았던 다양한 인간군상과 그들의 딜레마를 조명합니다.
Q. 왜 세운상가였을까요? 작가님과 이 부분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나요?
<메이드 인 세운상가>를 집필하신 차근호 작가님은 1980년대 이야기를 상징적인 공간에서 말하고 싶어 하셨어요. 그런 면에서 세운상가는 상당히 매력적인 곳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세운상가야말로 1980년대 도시 전설의 주인공이었으니까요. 작품에도 언급되듯이 군인이 총을 잃어버리면 총을 살 수 있고 세운상가에서 작정하면 그것이 미사일이든 탱크든, 무엇이든 다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가 실제로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었거든요. 이것이 차근호 작가님한테 많은 영감을 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작가님이 세운상가의 도시 전설을 소재로 작품을 쓰신다고 했을 때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Q. 작품을 만드시면서 세운상가를 취재하거나 인터뷰를 진행하신 내용이 있나요?
<메이드 인 세운상가>는 작가적 상상력에 의해 쓰인 작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980년대 세운상가의 사실적 재현에 초점을 두지는 않아요. 세운상가를 취재하거나 인터뷰를 진행하지는 않았지만 세운상가의 역사와 당시의 한국 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에 그와 관계된 자료와 책, 논문 등을 중점으로 보았죠.
Q. 작품 외적으로 세운상가와 인연이 있으세요? 요즘의 세운상가를 보면 개인적으로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저와 작가님뿐만 아니라 배우님들은 세운상가와 관련된 기억이 하나씩은 있습니다. 왜냐하면 연배들이 대부분 40, 50대거든요. 이 나이대의 사람들은 당시 한국 최고의 전자상가였던 세운상가를 잘 알고 있잖아요? 전자제품을 사거나 외국 도서, 음반을 사기 위해서 많이 찾았던 곳이죠. 요즘의 세운상가를 보면 한때 세상을 풍미했던 도시 전설의 주인공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는 생각이 들어서 씁쓸하기도 합니다.
Q. 이 연극을 준비하시면서, 보고 나서 관객들이 세운상가, 또는 세운상가 사람들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갖기를 바라셨나요?
<메이드 인 세운상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1980년대 한국 사회의 다양한 인간군상을 상징합니다. 작품의 인물들이 갖는 욕망 또한 당시 한국 시민의 욕망을 상징하지요. 이 작품의 등장 인물들에게는 각기 딜레마가 존재합니다. 그들은 딜레마 앞에서 고민하고 하나의 선택을 하고요. 그 선택은 그 인물들의 운명을 결정짓습니다. 작품 속 세운상가 사람들은 1980년대를 살았던 너무도 평범한 소시민들이었어요. 우리와 전혀 다른 것이 없는 인물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딜레마 앞에서 고민하듯 그들도 고민을 했습니다. 저는 관객들이 작품의 인물들을 보면서 “나라면 어떠한 선택을 했을까?”, “과연 무엇이 옳은 선택이었을까?”라는 질문을 하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질문을 통해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이 역사라는 맥락에서 이어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더불어 나이가 있는 관객들은 세운상가를 잘 알겠지만 젊은 관객들은 세운상가를 잘 모르는데요. 이 작품을 통해서 젊은 관객들이 한때 한국 최고의 전자상가이자 도시 전설의 주인공이었던 세운상가를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Q. 세운상가라는 소재에 대해 배우, 스텝들의 반응은 어떠했나요?
배우와 스텝들은 대부분 세운상가를 잘 알고 있는 세대라서 매우 반가워하더라고요. 세운상가에 대한 도시전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세운상가에서 잠수함을 만든다는 이야기에 매우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Q. 실제 지역이나 인물을 소재로 작품을 만드신 적이 또 있으셨나요? 그럴 때 염두에 두시는 게 있다면?
작년에 국채보상운동을 연극으로 만든 적이 있습니다. 그 시작점인 대구가 주요 무대였습니다. 주인공은 역사에 기록된 정보들로 재구성된 가공의 인물이었고요. 이런 작품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실의 재현보다 그 공간과 인물이 역사적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파악하고 이것을 동시대의 관객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것이죠. 왜냐하면 사실의 재현은 단순히 정보 전달에 머물 수 있지만, 역사적 맥락에서의 의미를 무대화하는 것은 관객에게 과거의 이야기를 현재의 이야기로 느끼게 하기 때문입니다.
Q. 이 작품의 배경은 1986년인데요. 이 시절의 이야기가 지금 시대에 갖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셨나요?
<메이드 인 세운상가>는 <한국 근현대사 재조명 시리즈>의 한 작품으로 이 시리즈가 다루는 주제는 ‘역사적 상황이 던진 딜레마와 그 앞에 선 인간’입니다. 1980년대는 지금도 양가적 감정이 남아있는 시대가 아닐까요? 분명히 군사 독재에 의해 헌법 파괴와 인권 유린이 자행되었던 시대였지만 누군가에게는 경제적인 호황이 있었던 시대로 기억되잖아요. 경제적 성취를 향한 열망과 민주화를 향한 열망은 아마도 당시 소시민의 욕망을 상징할 수 있는 키워드가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군사 독재 시대에서 이 두 가지 욕망을 함께 갖는 것은 어려웠죠.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를 버리도록 강요받았고요. <메이드 인 세운상가>의 모든 인물은 이와 같은 강요된 선택 앞에 섭니다. 이것은 역사적 상황이 던진 딜레마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메이드 인 세운상가>와 <한국 근현대사 재조명 시리즈>는 이 딜레마의 본질을 탐구합니다. 대체 누구에 의해 우리가 원치 않는 딜레마가 만들어지는 것일까? 그리고 이 딜레마는 어떤 정치적, 사회적 의미를 갖는가? 작업을 하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우리가 잘못된 것을 바로잡지 못하면 그와 같은 일이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1980년대는 지금도 누구에게는 잘 먹고 잘살았던 시대로 기억됩니다. 경제적 지표로 그 시대를 평가하면 그렇겠죠. 그렇지만 우리의 삶에는 경제적 지표 외에 더 중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상식과 정의라고 생각하고요. 이 작품이 1986년을 다루는 것은 경제적 호황 이면에 깔려 있는 정치적 폭력의 실상을 파헤침으로써 관객에게 보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과거와 현재를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창작자에게 매력적인 곳 세운상가가 역사적 공간으로 보존되길
Q. 지역사회 안에서 연극과 같은 문화예술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어떤 것으로 보시나요?
일반 시민들은 연극은 영화와 방송 같은 대중매체와는 달리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연극은 절대 어렵지 않아요. 연극이 순수예술로서 지금도 존재하는 것은 상업예술이 다루지 않는 진지한 주제를 다루기 때문인데요. 연극이 지역사회에 활성화된다면 시민들에게 연극으로 삶과 이 사회에 대한 보다 폭넓은 통찰력을 갖게 하는 계기를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연극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연극적 언어를 통해 시민들에게 새롭고 신선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고요.
Q. 세운상가는 도시개발 안에서 논쟁적인 장소인데요. 연출님은 세운상가가 앞으로 어떤 곳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라시나요?
세운상가는 창작자의 입장에서 매우 흥미로운 곳입니다. 세운상가가 도시 전설의 주인공으로 회자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이 공간이 많은 사람에게 상상력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겠죠. 뿐만 아니라 세운상가는 격동의 1980년대를 상징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해요. 저는 세운상가가 역사적인 공간으로서 보존되고 자리매김하기를 바랍니다.
Q. 세운상가 상인들에게 이번 연극은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보시나요? 어떤 말로 극장에 오시라고 이야기하고 싶으세요?
세운상가 사람들이 마음만 먹으면 미사일, 탱크, 전투기도 만들 수 있다! 실제로 사람들 사회에서 회자되었던 말입니다. 이것은 그만큼 세운상가가 한국을 대표하는 기술의 메카라는 것을 방증하는 말입니다. 지금은 세운상가가 많이 잊혀졌지만 상인분들은 세운상가가 오랜 시간 함께 하셨던 만큼 이 작품을 통해 과거의 향수를 많이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더불어 1986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작품인 만큼 우리가 겪었던 역사의 한 부분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메이드 인 세운상가>는 세운상가의 도시 전설을 무대화한 작품입니다. 이러한 소재의 작품은 <메이드 인 세운상가>가 처음인 만큼 신선한 즐거움은 물론 깊은 감동을 선사하리라 감히 기대해봅니다.
* 이 인터뷰는 안녕하-세운에 실린 인터뷰 기사를 재인용하였습니다.
메이드 인 세운상가
80년대를 상징하는 곳, 세운상가 이야기를 연극으로
Q. <안녕하-세운> 독자들에게 연출님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종로에서 태어나서 40년 넘게 종로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에요. 200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희곡 <내 마음의 삼류극장> 이 당선되어 작가로 활동하다가 2011년 이후 <에어로빅 보이즈>, <헤비메탈 걸스> 등 직접 쓴 작품을 연출하면서 연출가로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고요. 2015년 서울연극제에서 선보인 <청춘, 간다> 는 대상을 비롯, 희곡상, 연기상, 무대미술상, 신인연기상 등 6개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작가에서 연출가로 영역을 넓힘과 동시에 어둡고 무거운 주제의 이야기를 탈피해 코미디 장르를 선택하면서 연극인생의 전환기를 맞고 있다고 할까요? 현재는 극단 명작옥수수밭 대표, 희곡뮤지컬작가학교 라푸푸서원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Q. 이번 연극 <메이드 인 세운상가>는 어떤 연극인가요?
<메이드 인 세운상가>는 우리 극단에서 2018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한국 근현대사 재조명 시리즈>의 하나로 87년 6월 민주 항쟁 직전인 1986년을 다루고 있어요. 1986년에는 북한이 금강산 댐을 만들어 한국을 수공한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던 때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이것이 금강산 댐의 위험을 부풀린 사기극이었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당시에는 많은 사람이 사실로 알고 있었거든요. 이 작품은 북한의 수공 위협에 처했다고 믿었던 세운상가 사람들이 북한의 수공에 맞서 잠수함을 만드는 것을 이야기의 큰 틀로 갖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이를 통해서 당시를 살았던 다양한 인간군상과 그들의 딜레마를 조명합니다.
Q. 왜 세운상가였을까요? 작가님과 이 부분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나누셨나요?
<메이드 인 세운상가>를 집필하신 차근호 작가님은 1980년대 이야기를 상징적인 공간에서 말하고 싶어 하셨어요. 그런 면에서 세운상가는 상당히 매력적인 곳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세운상가야말로 1980년대 도시 전설의 주인공이었으니까요. 작품에도 언급되듯이 군인이 총을 잃어버리면 총을 살 수 있고 세운상가에서 작정하면 그것이 미사일이든 탱크든, 무엇이든 다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가 실제로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었거든요. 이것이 차근호 작가님한테 많은 영감을 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작가님이 세운상가의 도시 전설을 소재로 작품을 쓰신다고 했을 때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Q. 작품을 만드시면서 세운상가를 취재하거나 인터뷰를 진행하신 내용이 있나요?
<메이드 인 세운상가>는 작가적 상상력에 의해 쓰인 작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980년대 세운상가의 사실적 재현에 초점을 두지는 않아요. 세운상가를 취재하거나 인터뷰를 진행하지는 않았지만 세운상가의 역사와 당시의 한국 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기 때문에 그와 관계된 자료와 책, 논문 등을 중점으로 보았죠.
Q. 작품 외적으로 세운상가와 인연이 있으세요? 요즘의 세운상가를 보면 개인적으로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저와 작가님뿐만 아니라 배우님들은 세운상가와 관련된 기억이 하나씩은 있습니다. 왜냐하면 연배들이 대부분 40, 50대거든요. 이 나이대의 사람들은 당시 한국 최고의 전자상가였던 세운상가를 잘 알고 있잖아요? 전자제품을 사거나 외국 도서, 음반을 사기 위해서 많이 찾았던 곳이죠. 요즘의 세운상가를 보면 한때 세상을 풍미했던 도시 전설의 주인공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는 생각이 들어서 씁쓸하기도 합니다.
Q. 이 연극을 준비하시면서, 보고 나서 관객들이 세운상가, 또는 세운상가 사람들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갖기를 바라셨나요?
<메이드 인 세운상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1980년대 한국 사회의 다양한 인간군상을 상징합니다. 작품의 인물들이 갖는 욕망 또한 당시 한국 시민의 욕망을 상징하지요. 이 작품의 등장 인물들에게는 각기 딜레마가 존재합니다. 그들은 딜레마 앞에서 고민하고 하나의 선택을 하고요. 그 선택은 그 인물들의 운명을 결정짓습니다. 작품 속 세운상가 사람들은 1980년대를 살았던 너무도 평범한 소시민들이었어요. 우리와 전혀 다른 것이 없는 인물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딜레마 앞에서 고민하듯 그들도 고민을 했습니다. 저는 관객들이 작품의 인물들을 보면서 “나라면 어떠한 선택을 했을까?”, “과연 무엇이 옳은 선택이었을까?”라는 질문을 하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질문을 통해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이 역사라는 맥락에서 이어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더불어 나이가 있는 관객들은 세운상가를 잘 알겠지만 젊은 관객들은 세운상가를 잘 모르는데요. 이 작품을 통해서 젊은 관객들이 한때 한국 최고의 전자상가이자 도시 전설의 주인공이었던 세운상가를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Q. 세운상가라는 소재에 대해 배우, 스텝들의 반응은 어떠했나요?
배우와 스텝들은 대부분 세운상가를 잘 알고 있는 세대라서 매우 반가워하더라고요. 세운상가에 대한 도시전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세운상가에서 잠수함을 만든다는 이야기에 매우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Q. 실제 지역이나 인물을 소재로 작품을 만드신 적이 또 있으셨나요? 그럴 때 염두에 두시는 게 있다면?
작년에 국채보상운동을 연극으로 만든 적이 있습니다. 그 시작점인 대구가 주요 무대였습니다. 주인공은 역사에 기록된 정보들로 재구성된 가공의 인물이었고요. 이런 작품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사실의 재현보다 그 공간과 인물이 역사적 맥락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파악하고 이것을 동시대의 관객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것이죠. 왜냐하면 사실의 재현은 단순히 정보 전달에 머물 수 있지만, 역사적 맥락에서의 의미를 무대화하는 것은 관객에게 과거의 이야기를 현재의 이야기로 느끼게 하기 때문입니다.
Q. 이 작품의 배경은 1986년인데요. 이 시절의 이야기가 지금 시대에 갖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셨나요?
<메이드 인 세운상가>는 <한국 근현대사 재조명 시리즈>의 한 작품으로 이 시리즈가 다루는 주제는 ‘역사적 상황이 던진 딜레마와 그 앞에 선 인간’입니다. 1980년대는 지금도 양가적 감정이 남아있는 시대가 아닐까요? 분명히 군사 독재에 의해 헌법 파괴와 인권 유린이 자행되었던 시대였지만 누군가에게는 경제적인 호황이 있었던 시대로 기억되잖아요. 경제적 성취를 향한 열망과 민주화를 향한 열망은 아마도 당시 소시민의 욕망을 상징할 수 있는 키워드가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군사 독재 시대에서 이 두 가지 욕망을 함께 갖는 것은 어려웠죠.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를 버리도록 강요받았고요. <메이드 인 세운상가>의 모든 인물은 이와 같은 강요된 선택 앞에 섭니다. 이것은 역사적 상황이 던진 딜레마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메이드 인 세운상가>와 <한국 근현대사 재조명 시리즈>는 이 딜레마의 본질을 탐구합니다. 대체 누구에 의해 우리가 원치 않는 딜레마가 만들어지는 것일까? 그리고 이 딜레마는 어떤 정치적, 사회적 의미를 갖는가? 작업을 하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우리가 잘못된 것을 바로잡지 못하면 그와 같은 일이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1980년대는 지금도 누구에게는 잘 먹고 잘살았던 시대로 기억됩니다. 경제적 지표로 그 시대를 평가하면 그렇겠죠. 그렇지만 우리의 삶에는 경제적 지표 외에 더 중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상식과 정의라고 생각하고요. 이 작품이 1986년을 다루는 것은 경제적 호황 이면에 깔려 있는 정치적 폭력의 실상을 파헤침으로써 관객에게 보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과거와 현재를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창작자에게 매력적인 곳 세운상가가 역사적 공간으로 보존되길
Q. 지역사회 안에서 연극과 같은 문화예술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어떤 것으로 보시나요?
일반 시민들은 연극은 영화와 방송 같은 대중매체와는 달리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연극은 절대 어렵지 않아요. 연극이 순수예술로서 지금도 존재하는 것은 상업예술이 다루지 않는 진지한 주제를 다루기 때문인데요. 연극이 지역사회에 활성화된다면 시민들에게 연극으로 삶과 이 사회에 대한 보다 폭넓은 통찰력을 갖게 하는 계기를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연극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연극적 언어를 통해 시민들에게 새롭고 신선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고요.
Q. 세운상가는 도시개발 안에서 논쟁적인 장소인데요. 연출님은 세운상가가 앞으로 어떤 곳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라시나요?
세운상가는 창작자의 입장에서 매우 흥미로운 곳입니다. 세운상가가 도시 전설의 주인공으로 회자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이 공간이 많은 사람에게 상상력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겠죠. 뿐만 아니라 세운상가는 격동의 1980년대를 상징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해요. 저는 세운상가가 역사적인 공간으로서 보존되고 자리매김하기를 바랍니다.
Q. 세운상가 상인들에게 이번 연극은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보시나요? 어떤 말로 극장에 오시라고 이야기하고 싶으세요?
세운상가 사람들이 마음만 먹으면 미사일, 탱크, 전투기도 만들 수 있다! 실제로 사람들 사회에서 회자되었던 말입니다. 이것은 그만큼 세운상가가 한국을 대표하는 기술의 메카라는 것을 방증하는 말입니다. 지금은 세운상가가 많이 잊혀졌지만 상인분들은 세운상가가 오랜 시간 함께 하셨던 만큼 이 작품을 통해 과거의 향수를 많이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더불어 1986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 작품인 만큼 우리가 겪었던 역사의 한 부분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메이드 인 세운상가>는 세운상가의 도시 전설을 무대화한 작품입니다. 이러한 소재의 작품은 <메이드 인 세운상가>가 처음인 만큼 신선한 즐거움은 물론 깊은 감동을 선사하리라 감히 기대해봅니다.
* 이 인터뷰는 안녕하-세운에 실린 인터뷰 기사를 재인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