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고 눈 내리는 풍경과 유난히 어울리는 산림동의 골목. 철을 다루는 가게가 많아서일까. 이곳은 온도에 따라 얼기도 하고 녹아내리기도 하는 쇠처럼 상반된 느낌이 공존하는 묘한 공간이다. 망치와 커터가 쇠를 두드리고 자르는 소리가 가득했던 골목 어디선가 구성진 노랫소리와 악기 소리,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종종 울려 퍼진다. R3028의 작가들이 만들어내는 작은 울림이다.자칫 지나치기 쉬운 골목 틈새에 자리한 R3028의 철문을 열고 좁은 계단을 올랐다. 작업을 하던 고대웅 작가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R3028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려요.
R3028이라는 팀은 ‘세상을 위한 예술’이라는 모토를 가지고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공간을 2016년 1월 1일부터 쓰고 있어요. 당시에는 이 근처 건물들이 되게 많이 비어 있었는데 여기 역시 방치되어 아랫집 사장님께서 몰래 창고로 쓰던 공간이었어요. 저희가 이곳을 작업, 공연, 전시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꿨죠.
이곳에 들어오게 된 이유가 있나요?
제가 2015년쯤에 세운상가에 위치한 ‘스페이스바 421’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하면서 여기에 작업실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시간이 쌓인 듯 낡은 건물들이 서울에서 느끼지 못했던 매력을 풍기기도 했고, 재료를 구하기에도 좋았거든요. 그래서 계속 기회를 알아보다가 구청에서 예술가 지원 공모사업을 통해 공간을 얻게 됐어요. 이쪽이 비어 있는 공간이 많은데 그런 공간에 예술가들이 자리를 잡게 보증금과 월세 일부를 지원을 해주는 사업이었죠.
비어 있던 공간을 개조하신 거군요. 공간이 되게 특이하고 재밌어요. 여기에 전시 공간도 마련을 해두셨는데 외부 작가들에게 대관도 하시나요?
처음에 작업실에 전시 공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건 저희고 마음껏 전시하고 싶어서 였어요. 그러다 여러 작가들이 저희 공간, 산림동 골목의 매력에 매료되어 작업을 하거나 전시를 하고 싶다 해서 대관을 하기 시작했어요.
단순히 전시를 하는 것도 좋지만 그과정이 제도 안에서 효력을 발휘하면 좋겠다 생각해서 저희 공간을 법인으로 등록했어요. 그러다보니 여기에서 진시를 하면 작가라는 작업을 가졌다고 인정받을 수 있죠. 미술대학 입장에서 학생이 등록된 공간에서 전시를 하면 취업률로 계산되어 과가 존속되는데 도움이 될수 있고 학생들 입장에서도 정식 기록으로 남을 수 있으니 서로 좋은 거죠. 작가가 전시를 하고 싶으면 자신이 정한 선 안에서 비용을 지불하면 돼요.
여기 구성원들은 어떻게 되어 있고, 어떻게 만났나요?
처음 공간을 구성 할 당시 8명의 작가들이 있었어요. 그들은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하면서 만나게 되었어요. 창작과 예술교육을 병행하기 위해서 팀을 꾸리게 되어요. 팀 운영이 지속 되면서 일부는 임용고시를 보기 위해, 일부는 기관에 취업을 하게 되고 일부는 지역에서 활동하던 작가들이 유입되면서 현재 3명이 팀을 구성하고 있어요.
을지로 5가쪽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면서 방 하나에 아트웍을 하던 이원경작가가 합류하게 되었고 프랑스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세운상가에서 작업공간을 찾던 류지영작가가 합류하게 되었어요. 각자의 장점이 달라 서로 도와가며 여러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고 있어 매우 든든합니다. 팀 소속의 3명 외에도 프로젝트 성격에 따라 주변팀, 작가, 기획자들과 협업하며 유기적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어떤 작업을 함께 하고 계시나요?
저희가 미술을 전공하고 예술의 교육과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고민하는 작가들이어서 프로젝트의 큰 맥락은, 지역에 대한 역사 조사를 기반으로 예술가 혹은 예술교육자들이 지역에 녹아들면서 함께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하는 것들이 주를 이루고 있어요. 그래서 이곳의 거리 자체를 예술 교육에 관련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어요.
팀원들 개인작업을 각자 진행하고 있어요. 팀원으로는 지역 관련 된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하고 있어요. 2017년엔 철공소 단지 장인들과 지역의 역사를 기념하는 『장인의 화원』을 조성하기도 하였어요. 작업실을 꾸리게 되면서 만난 산림동 골목은 골목 그 자체도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곳이었고 이곳에서 일하시는 모든 분들이 감사하게 느껴졌어요. 그곳을 기념할 공간이 있었으면 해서 조성하게 되었어요. 서울시아동심리상담센터의 아이들과 공동체중심 미술교육의 일환으로 『셔터아트』를 진행하기도 했어요. 이후 작가들과 사장님들 13분씩 매칭시켜 같이 시안을 만들고 셔터에 그림을 그리는 『골목길러리』를 조성하기도 하였어요. 그 외에도 중구내 학교들에서 예술교육을 진행하고 있어요.
그 외에 2016년부터 현재까지 『철의골목:도시음악』이라는 작은 공연을 골목에서 벌이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이곳을 지켜주신 분들이 계셔서 저희가 작업실을 운영할 수 있게 된 것인데 어떻게든 예술로 보답하고 싶었어요. 그 첫 시작이 되어준 것이 『철의골목:도시음악』이었어요.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가장 빠르고 직접적인 예술이 되어주어 기획하게 되었고 3년째 진행하면서 사장님들, 외부에서 유입된 젊은 층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장을 만들어 가고 있고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작년까지 작가로 참여한 『을지로 라이트웨이(EULJIRO LIGHTWAY)』와 『세운상가 서편제西偏祭』를 기획에 참여해 지역의 가치를 알리고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일들에도 참여하게 되었어요.
거리 자체를 활용하신다고요?
『철의 골목:도시 음악』이라는 공연을 했는데, 골목 뒤쪽에 폭이 넓은 공간이 있거든요. 저희는 거기를 ‘산림동 마당’이라고 이름 지었어요. 마당이라는 것이 전통적으로는 항상 있었던 곳인데 지금은 산업화로 인해서 많이 없어졌죠. 저희는 그런 특징에 주목했어요. 원래는 마당이 사람들이 같이 무언가를 했었고, 공동체가 형성이 됐고, 문화를 공유했던 공간이었어요. 지금은 그런 공간이 없어서 사람들이 같이 모인다거나 이야기를 하려면 커피 한 잔이라도 뭔가 지불해야 공유할 수 있는 공간들이 대부분이죠. 과거 마당이 가졌던 긍정적인 부분을 다시 한 번 현대 도심에 재현해보자는 취지를 가지고 골목의 한 공간에 마당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야외행사 및 공연을 했어요. 이 지역이 철공업이 많은데 일이 끝나고 나면 마당이 되게 한산해져서, 그런 비어있는 공간들에서 공연을 진행하고 있어요. 공연의 지역에 계신 분들께서도 많은 분들을 가져주시고 참여해 주시고 계십니다.
처음에 상인분들, 사장님분들이랑 친해지기가 힘들지 않았나요?
사실 되게 걱정을 많이 했어요. 예술가들이 지역재생을 한다는 명목으로 들어갔는데 지역 커뮤니티가 오히려 안 좋게 바뀌는 경우를 많이 봤고, 그렇게는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한 차례씩 인사를 드리고 이런저런 작업과 공연을 하겠다고 차근히 말씀을 드렸죠.
처음 행사를 진행할 때는 애로사항이 많았어요, 마당을 쓰는 것도 그렇고 사장님 한 분 한 분 찾아가서 설득하고 인사드리고, 저희 소개도 했어요. 설득이라고 할 것도 없지만 일에 방해만 안 되면 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여기 와서 첫 번째 행사는 ‘와락’이라는 창작 집단이랑 같이 했어요. <아하 그렇군요 공자님>이라는 극이었는데, 공자 같은 시대의 스승 같은 존재가 현대인의 문제나 고민을 해결해주는 내용의 극이에요. 관객 참여적인 극이기 때문에 관객들한테 고민 상담을 받고 해결을 해주는 구조예요. 주변 사장님들의 고민을 받으면서 소통하기 시작했죠. 처음에는 무대를 설치할 때, 이 동네는 젊은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사장님들이 ‘학생들이 왜 여기에 왔지? 무당이야?’ 라고 물어보시기도 하셨어요(웃음). 그런데 그게 경계심이 아니라 호의적인 관심이었어요. 나중에는 극이 끝나고 막걸리를 사다 주기도 하시고, 이후로는 언제 또 하느냐고 관심도 가져주셨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입소문이 나서 주위 사장님들이 친구 분들도 데려와 주셔서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지금은 많이 응원을 해주시고 있고 호의적이세요. 가끔 행사 때 춤도 추고 가세요(웃음).
예술가들이 도시재생을 한다고 했을 때 많이 부딪치는 경우를 봤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 있었나요?
대표적인 것이 이화동 벽화마을 조성 사업인데, 취지는 좋았지만 지역 주민에게 사업의 결과를 떠 넘기는 형태가 되어버렸어요. 작업을 다 해놓고 그 이후로 관심을 안 가져요. 지역민들과 유대관계도 없이 진행된 사업이라 그것을 보러 오는 외부인들은 동네주민들에겐 골칫거리일 뿐이었어요. 그림을 그리는 결과가 같더라도 과정이 달라진다면 가치는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보이는 걸 바꾸는 건 쉬운 일이에요. 하지만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건 쉬운 작업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다각도로 접근해야 해요. 때문에 양적으로서의 예술 행위와, 공적으로서의 인식들을 같이 바꿔나가려고 애를 많이 쓰고 있어요. 사실 저희가 시각예술을 전공한 사람들인데 그런 부분들부터 바꿔나가고 싶어서 미술 쪽 분야만이 아니라 공연 기획도 진행을 하는 거구요.
지역과 그 지역의 역사를 지키는 것에 대해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남겨지는 부분은 참 소중한 것 같아요. 우리나라 현대 경제발전의 주축으로 토목사업을 했잖아요. 그게 나라가 발전해서 여기까지 오는 데까지는 도움이 된 것은 분명해요. 하지만 그런 개발이 계속되면 결과는 지역의 문화 백화현상을 가속하고 지역성이 소멸할 뿐이에요.
사람이 추억할 수 있는 거리가 남아 잇는 것과 남아 있지 않은 것에 대한 정서적 박탈감은 매우 커요. 내가 어렸을 때 자란 곳을 자식들과 함께 와봤더니 거대한 아파트밖에 없다면 허무하겠죠. 더 각박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우리가 스스로 계속 만들어왔던 것 같아요. 추억할 게 없어지고 공유할 게 없어지고 세대가 같이 모여서 공감할만한 것들이 얼마나 남아있는 걸까요.
얼마 전 ‘옥바라지 마음’이 결국 헐렸는데, 역사학자, 건축가 등 많은 사람이 중요하다고 했지만 결국 재개발을 했어요. 거기에 제일 핵심이 된 건 경제논리였죠. 유지되는 것보다 새 건물을 짓는 게 우리한테 도움이 된다는 거예요. 그 공간에 담겨있는 이야기나, 사연, 역사적 가치 같은 부분들을 우리가 보지 못하거나, 혹은 암묵적으로 알면서도 무시해버린다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에요. 지금 남아 있는 것들을 제대로 들여다 본다면 당장의 재개발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경제 이익보다 더 큰 자산이 되어 줄 것이라 확신해요.
그런 가치들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를 보면 좀 안타까워요.
맞아요. 사실 한국 사람들은 유럽의 많은 나라를 되게 이상적이고, 아름답고, 여행 가고 싶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여기 있는 건물들을 다니다 보면 관리가 안 돼서 그렇지, 여기 있는 건물들도 무척 훌륭해요. 그동안 우리는 스스로에 대한 과거를 품지 못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일제 강점기는 잊혀야 할 역사가 되어 있죠. 그렇지만 그대도 우리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삶을 사셨잖아요? 그 안에서 서로 사랑과 우정도 나누며, 그림도 그리고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겠죠. 일제 강점기라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그걸 다 없애야 할까요?
아이러니 하게도 일제 강점기만이 아니라 근대화 과정에서 더 많은 우리나라의 전통이 많이 사라졌죠. 과거부터 존재했고 생활을 터전이었던 것들을 무수히 지워오면서 경제가 발전했어요. 그 결과 일단 발전은 했는데, 이후에 나아가는 방향이 좀 이상해진 것 같아요.
교육으로 예를 들면, 다섯 개의 보기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의 정답을 맞히면 우등. 틀리면 열등... 그런 식으로 나누는 거죠. 그 하나의 정답을 맞히는 게 뭐가 중요할까요. 다른 답을 고른 그 학생도 각자의 이유가 있을 텐데 그것에 우리는 관심을 갖지 않고, 어떤 기준에 의해 획일화 시켰던 거죠.
그렇기 때문에 그 획일화된 기준 속에서 도심에 비해 낡은 부도심은 나쁜 거, 쪽팔린 거, 없어져야 할 것이 된 거죠. 왜 있었는지에 대한 관심보다, 여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다 어떠한 기준에만 비춰서 바라봤다는 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요즘은 많은 사람이 좀 달라져야 할 때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지만 이역시도 지속되려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저희도 인터뷰 다니면서 상인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곳의 역사가 그 사람에게 담겨 있다는 게 느껴져서 이곳의 가치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더라고요. 그런 가치관 때문에 이 지역을 더욱 특별하게 생각하시는 건가요?
네, 제게도 지역에 남아있는 것들이 무척 소중해요. 우리가 이 지역에 대해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되는 순간이 중요한 것 같아요. 1936년도에 일제가 만든 지도가 있는데 거길 보면, 작업실 옆의 기와 건물이 그대로 그려져 있어요.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거죠. 이런 건물들에 얼마나 많은 역사와 이야기가 있겠어요. 근방을 다니다 보면 옛날 한옥들의 주축돌이 남겨져 있기도 해요. 또 마을 입구에 있던 돌장승 한 쌍도 남아있고... 곳곳에 지금은 만들 수도 없는 오래된 건축들이 많이 남아있어요.
이 지역은 근대 건축물 특화지역 같은 거로 지정을 해서 보존과 보수가 되는 지역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장인 분들이 유입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완을 해주고, 장인의 거리를 만들고 싶어서 구청에도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재개발 문제가 얽혀 있어 구청에서 밀어붙이기 힘든것도 알고 있어요. 때문에 저희 차원에서 『장인의 화원』을 만들고 『철의골목:도시음악』을 열고 『을지로사용법』 워크숍을 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구청에서 제도적으로 지원을 해주면 좋을 것 같네요.
그런데 사실 그런 것들을 드러내고 양적으로 서로에게 공감하게 할 수 있는 역할은 역사학자들이나 구청 직원들이 아니고 예술가들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시각 예술이든, 글쓰기든 예술가들이 뭔가를 만들고 관객들이 그것을 접했을 때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면 그건 큰 힘이 될 수 있어요. 그런 역할을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해야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맥락에서 저희가 하는 일들을 정리하자면 이곳의 구성원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관심을 갖고, 이런 공간들을 다시 보게 해나가는 일들인 것 같아요.
앞으로 그런 부분에 있어서 어떤 방향의 작업을 더 하실 예정인가요?
지난 시간동안 지역에 있는 것들을 발견하고 기획하며 진행하는 일을 진행 했어요. 그 과정이 저와 저희 팀원들에겐 창작이었고 실험이었고 스스로를 확인하는 과정이었어요. 이제 어느정도 확신이 드는 지점들이 생긴 것 같아요. 지속적으로 지역에 관한 이야기들을 해석하고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형태의 작업들을 진행해 나갈 예정이에요. 그게 개인 창작이 될 수도 공연이 될 수도 전시가 될 수도 책이 될 수도 축제가 될 수도 있어요. 그런 일들을 주변에 유능한 장인, 예술가, 기획자, 관과 협력하며 해나가고자 합니다.
마지막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세운상가의 동쪽과 서쪽 골목 안에 손으로 썼던 간판들이 많이 남아 있어요. 그런 것들이 재밌어요. 그 간판들 중에 사장님의 아버님이 써주신 간판들도 있고... 다 지킬 수는 없겠지만, 그런 요소 요소들이 모여 좋은 유산이 되면 좋겠어요.
여기가 20세기와 21세기를 같이 볼 수 있는 지역으로 조화가 됐으면 좋겠어요. 철공업과 예술이 조화되고, 예술과 기술이 조화되고, 세대까지 조화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죠. 이 일대도 건물들이 헐리고 없어지는 것보다, 그 건물들이 함께 있으면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모습이 좋을 것 같아요.
R3028 . 서울시 중구 창경궁로 5 나길3, 2층
출처 : <세운사람들>, 서울특별시 제작, 사단법인 공공네트워크(OO은대학) 발행
2018.8 업데이트
비 내리고 눈 내리는 풍경과 유난히 어울리는 산림동의 골목. 철을 다루는 가게가 많아서일까. 이곳은 온도에 따라 얼기도 하고 녹아내리기도 하는 쇠처럼 상반된 느낌이 공존하는 묘한 공간이다. 망치와 커터가 쇠를 두드리고 자르는 소리가 가득했던 골목 어디선가 구성진 노랫소리와 악기 소리,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종종 울려 퍼진다. R3028의 작가들이 만들어내는 작은 울림이다.자칫 지나치기 쉬운 골목 틈새에 자리한 R3028의 철문을 열고 좁은 계단을 올랐다. 작업을 하던 고대웅 작가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R3028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려요.
R3028이라는 팀은 ‘세상을 위한 예술’이라는 모토를 가지고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공간을 2016년 1월 1일부터 쓰고 있어요. 당시에는 이 근처 건물들이 되게 많이 비어 있었는데 여기 역시 방치되어 아랫집 사장님께서 몰래 창고로 쓰던 공간이었어요. 저희가 이곳을 작업, 공연, 전시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꿨죠.
이곳에 들어오게 된 이유가 있나요?
제가 2015년쯤에 세운상가에 위치한 ‘스페이스바 421’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하면서 여기에 작업실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시간이 쌓인 듯 낡은 건물들이 서울에서 느끼지 못했던 매력을 풍기기도 했고, 재료를 구하기에도 좋았거든요. 그래서 계속 기회를 알아보다가 구청에서 예술가 지원 공모사업을 통해 공간을 얻게 됐어요. 이쪽이 비어 있는 공간이 많은데 그런 공간에 예술가들이 자리를 잡게 보증금과 월세 일부를 지원을 해주는 사업이었죠.
비어 있던 공간을 개조하신 거군요. 공간이 되게 특이하고 재밌어요. 여기에 전시 공간도 마련을 해두셨는데 외부 작가들에게 대관도 하시나요?
처음에 작업실에 전시 공간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건 저희고 마음껏 전시하고 싶어서 였어요. 그러다 여러 작가들이 저희 공간, 산림동 골목의 매력에 매료되어 작업을 하거나 전시를 하고 싶다 해서 대관을 하기 시작했어요.
단순히 전시를 하는 것도 좋지만 그과정이 제도 안에서 효력을 발휘하면 좋겠다 생각해서 저희 공간을 법인으로 등록했어요. 그러다보니 여기에서 진시를 하면 작가라는 작업을 가졌다고 인정받을 수 있죠. 미술대학 입장에서 학생이 등록된 공간에서 전시를 하면 취업률로 계산되어 과가 존속되는데 도움이 될수 있고 학생들 입장에서도 정식 기록으로 남을 수 있으니 서로 좋은 거죠. 작가가 전시를 하고 싶으면 자신이 정한 선 안에서 비용을 지불하면 돼요.
여기 구성원들은 어떻게 되어 있고, 어떻게 만났나요?
처음 공간을 구성 할 당시 8명의 작가들이 있었어요. 그들은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하면서 만나게 되었어요. 창작과 예술교육을 병행하기 위해서 팀을 꾸리게 되어요. 팀 운영이 지속 되면서 일부는 임용고시를 보기 위해, 일부는 기관에 취업을 하게 되고 일부는 지역에서 활동하던 작가들이 유입되면서 현재 3명이 팀을 구성하고 있어요.
을지로 5가쪽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면서 방 하나에 아트웍을 하던 이원경작가가 합류하게 되었고 프랑스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세운상가에서 작업공간을 찾던 류지영작가가 합류하게 되었어요. 각자의 장점이 달라 서로 도와가며 여러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고 있어 매우 든든합니다. 팀 소속의 3명 외에도 프로젝트 성격에 따라 주변팀, 작가, 기획자들과 협업하며 유기적으로 활동하고 있어요.
어떤 작업을 함께 하고 계시나요?
저희가 미술을 전공하고 예술의 교육과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고민하는 작가들이어서 프로젝트의 큰 맥락은, 지역에 대한 역사 조사를 기반으로 예술가 혹은 예술교육자들이 지역에 녹아들면서 함께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을 고민하는 것들이 주를 이루고 있어요. 그래서 이곳의 거리 자체를 예술 교육에 관련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어요.
팀원들 개인작업을 각자 진행하고 있어요. 팀원으로는 지역 관련 된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하고 있어요. 2017년엔 철공소 단지 장인들과 지역의 역사를 기념하는 『장인의 화원』을 조성하기도 하였어요. 작업실을 꾸리게 되면서 만난 산림동 골목은 골목 그 자체도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곳이었고 이곳에서 일하시는 모든 분들이 감사하게 느껴졌어요. 그곳을 기념할 공간이 있었으면 해서 조성하게 되었어요. 서울시아동심리상담센터의 아이들과 공동체중심 미술교육의 일환으로 『셔터아트』를 진행하기도 했어요. 이후 작가들과 사장님들 13분씩 매칭시켜 같이 시안을 만들고 셔터에 그림을 그리는 『골목길러리』를 조성하기도 하였어요. 그 외에도 중구내 학교들에서 예술교육을 진행하고 있어요.
그 외에 2016년부터 현재까지 『철의골목:도시음악』이라는 작은 공연을 골목에서 벌이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이곳을 지켜주신 분들이 계셔서 저희가 작업실을 운영할 수 있게 된 것인데 어떻게든 예술로 보답하고 싶었어요. 그 첫 시작이 되어준 것이 『철의골목:도시음악』이었어요.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가장 빠르고 직접적인 예술이 되어주어 기획하게 되었고 3년째 진행하면서 사장님들, 외부에서 유입된 젊은 층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장을 만들어 가고 있고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작년까지 작가로 참여한 『을지로 라이트웨이(EULJIRO LIGHTWAY)』와 『세운상가 서편제西偏祭』를 기획에 참여해 지역의 가치를 알리고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일들에도 참여하게 되었어요.
거리 자체를 활용하신다고요?
『철의 골목:도시 음악』이라는 공연을 했는데, 골목 뒤쪽에 폭이 넓은 공간이 있거든요. 저희는 거기를 ‘산림동 마당’이라고 이름 지었어요. 마당이라는 것이 전통적으로는 항상 있었던 곳인데 지금은 산업화로 인해서 많이 없어졌죠. 저희는 그런 특징에 주목했어요. 원래는 마당이 사람들이 같이 무언가를 했었고, 공동체가 형성이 됐고, 문화를 공유했던 공간이었어요. 지금은 그런 공간이 없어서 사람들이 같이 모인다거나 이야기를 하려면 커피 한 잔이라도 뭔가 지불해야 공유할 수 있는 공간들이 대부분이죠. 과거 마당이 가졌던 긍정적인 부분을 다시 한 번 현대 도심에 재현해보자는 취지를 가지고 골목의 한 공간에 마당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야외행사 및 공연을 했어요. 이 지역이 철공업이 많은데 일이 끝나고 나면 마당이 되게 한산해져서, 그런 비어있는 공간들에서 공연을 진행하고 있어요. 공연의 지역에 계신 분들께서도 많은 분들을 가져주시고 참여해 주시고 계십니다.
처음에 상인분들, 사장님분들이랑 친해지기가 힘들지 않았나요?
사실 되게 걱정을 많이 했어요. 예술가들이 지역재생을 한다는 명목으로 들어갔는데 지역 커뮤니티가 오히려 안 좋게 바뀌는 경우를 많이 봤고, 그렇게는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한 차례씩 인사를 드리고 이런저런 작업과 공연을 하겠다고 차근히 말씀을 드렸죠.
처음 행사를 진행할 때는 애로사항이 많았어요, 마당을 쓰는 것도 그렇고 사장님 한 분 한 분 찾아가서 설득하고 인사드리고, 저희 소개도 했어요. 설득이라고 할 것도 없지만 일에 방해만 안 되면 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여기 와서 첫 번째 행사는 ‘와락’이라는 창작 집단이랑 같이 했어요. <아하 그렇군요 공자님>이라는 극이었는데, 공자 같은 시대의 스승 같은 존재가 현대인의 문제나 고민을 해결해주는 내용의 극이에요. 관객 참여적인 극이기 때문에 관객들한테 고민 상담을 받고 해결을 해주는 구조예요. 주변 사장님들의 고민을 받으면서 소통하기 시작했죠. 처음에는 무대를 설치할 때, 이 동네는 젊은 사람들이 거의 없어서 사장님들이 ‘학생들이 왜 여기에 왔지? 무당이야?’ 라고 물어보시기도 하셨어요(웃음). 그런데 그게 경계심이 아니라 호의적인 관심이었어요. 나중에는 극이 끝나고 막걸리를 사다 주기도 하시고, 이후로는 언제 또 하느냐고 관심도 가져주셨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입소문이 나서 주위 사장님들이 친구 분들도 데려와 주셔서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지금은 많이 응원을 해주시고 있고 호의적이세요. 가끔 행사 때 춤도 추고 가세요(웃음).
예술가들이 도시재생을 한다고 했을 때 많이 부딪치는 경우를 봤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 있었나요?
대표적인 것이 이화동 벽화마을 조성 사업인데, 취지는 좋았지만 지역 주민에게 사업의 결과를 떠 넘기는 형태가 되어버렸어요. 작업을 다 해놓고 그 이후로 관심을 안 가져요. 지역민들과 유대관계도 없이 진행된 사업이라 그것을 보러 오는 외부인들은 동네주민들에겐 골칫거리일 뿐이었어요. 그림을 그리는 결과가 같더라도 과정이 달라진다면 가치는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보이는 걸 바꾸는 건 쉬운 일이에요. 하지만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건 쉬운 작업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다각도로 접근해야 해요. 때문에 양적으로서의 예술 행위와, 공적으로서의 인식들을 같이 바꿔나가려고 애를 많이 쓰고 있어요. 사실 저희가 시각예술을 전공한 사람들인데 그런 부분들부터 바꿔나가고 싶어서 미술 쪽 분야만이 아니라 공연 기획도 진행을 하는 거구요.
지역과 그 지역의 역사를 지키는 것에 대해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남겨지는 부분은 참 소중한 것 같아요. 우리나라 현대 경제발전의 주축으로 토목사업을 했잖아요. 그게 나라가 발전해서 여기까지 오는 데까지는 도움이 된 것은 분명해요. 하지만 그런 개발이 계속되면 결과는 지역의 문화 백화현상을 가속하고 지역성이 소멸할 뿐이에요.
사람이 추억할 수 있는 거리가 남아 잇는 것과 남아 있지 않은 것에 대한 정서적 박탈감은 매우 커요. 내가 어렸을 때 자란 곳을 자식들과 함께 와봤더니 거대한 아파트밖에 없다면 허무하겠죠. 더 각박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우리가 스스로 계속 만들어왔던 것 같아요. 추억할 게 없어지고 공유할 게 없어지고 세대가 같이 모여서 공감할만한 것들이 얼마나 남아있는 걸까요.
얼마 전 ‘옥바라지 마음’이 결국 헐렸는데, 역사학자, 건축가 등 많은 사람이 중요하다고 했지만 결국 재개발을 했어요. 거기에 제일 핵심이 된 건 경제논리였죠. 유지되는 것보다 새 건물을 짓는 게 우리한테 도움이 된다는 거예요. 그 공간에 담겨있는 이야기나, 사연, 역사적 가치 같은 부분들을 우리가 보지 못하거나, 혹은 암묵적으로 알면서도 무시해버린다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에요. 지금 남아 있는 것들을 제대로 들여다 본다면 당장의 재개발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경제 이익보다 더 큰 자산이 되어 줄 것이라 확신해요.
그런 가치들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를 보면 좀 안타까워요.
맞아요. 사실 한국 사람들은 유럽의 많은 나라를 되게 이상적이고, 아름답고, 여행 가고 싶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여기 있는 건물들을 다니다 보면 관리가 안 돼서 그렇지, 여기 있는 건물들도 무척 훌륭해요. 그동안 우리는 스스로에 대한 과거를 품지 못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일제 강점기는 잊혀야 할 역사가 되어 있죠. 그렇지만 그대도 우리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삶을 사셨잖아요? 그 안에서 서로 사랑과 우정도 나누며, 그림도 그리고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겠죠. 일제 강점기라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그걸 다 없애야 할까요?
아이러니 하게도 일제 강점기만이 아니라 근대화 과정에서 더 많은 우리나라의 전통이 많이 사라졌죠. 과거부터 존재했고 생활을 터전이었던 것들을 무수히 지워오면서 경제가 발전했어요. 그 결과 일단 발전은 했는데, 이후에 나아가는 방향이 좀 이상해진 것 같아요.
교육으로 예를 들면, 다섯 개의 보기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의 정답을 맞히면 우등. 틀리면 열등... 그런 식으로 나누는 거죠. 그 하나의 정답을 맞히는 게 뭐가 중요할까요. 다른 답을 고른 그 학생도 각자의 이유가 있을 텐데 그것에 우리는 관심을 갖지 않고, 어떤 기준에 의해 획일화 시켰던 거죠.
그렇기 때문에 그 획일화된 기준 속에서 도심에 비해 낡은 부도심은 나쁜 거, 쪽팔린 거, 없어져야 할 것이 된 거죠. 왜 있었는지에 대한 관심보다, 여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다 어떠한 기준에만 비춰서 바라봤다는 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요즘은 많은 사람이 좀 달라져야 할 때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다행이지만 이역시도 지속되려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저희도 인터뷰 다니면서 상인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곳의 역사가 그 사람에게 담겨 있다는 게 느껴져서 이곳의 가치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더라고요. 그런 가치관 때문에 이 지역을 더욱 특별하게 생각하시는 건가요?
네, 제게도 지역에 남아있는 것들이 무척 소중해요. 우리가 이 지역에 대해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되는 순간이 중요한 것 같아요. 1936년도에 일제가 만든 지도가 있는데 거길 보면, 작업실 옆의 기와 건물이 그대로 그려져 있어요.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거죠. 이런 건물들에 얼마나 많은 역사와 이야기가 있겠어요. 근방을 다니다 보면 옛날 한옥들의 주축돌이 남겨져 있기도 해요. 또 마을 입구에 있던 돌장승 한 쌍도 남아있고... 곳곳에 지금은 만들 수도 없는 오래된 건축들이 많이 남아있어요.
이 지역은 근대 건축물 특화지역 같은 거로 지정을 해서 보존과 보수가 되는 지역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장인 분들이 유입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완을 해주고, 장인의 거리를 만들고 싶어서 구청에도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재개발 문제가 얽혀 있어 구청에서 밀어붙이기 힘든것도 알고 있어요. 때문에 저희 차원에서 『장인의 화원』을 만들고 『철의골목:도시음악』을 열고 『을지로사용법』 워크숍을 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구청에서 제도적으로 지원을 해주면 좋을 것 같네요.
그런데 사실 그런 것들을 드러내고 양적으로 서로에게 공감하게 할 수 있는 역할은 역사학자들이나 구청 직원들이 아니고 예술가들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시각 예술이든, 글쓰기든 예술가들이 뭔가를 만들고 관객들이 그것을 접했을 때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면 그건 큰 힘이 될 수 있어요. 그런 역할을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해야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맥락에서 저희가 하는 일들을 정리하자면 이곳의 구성원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관심을 갖고, 이런 공간들을 다시 보게 해나가는 일들인 것 같아요.
앞으로 그런 부분에 있어서 어떤 방향의 작업을 더 하실 예정인가요?
지난 시간동안 지역에 있는 것들을 발견하고 기획하며 진행하는 일을 진행 했어요. 그 과정이 저와 저희 팀원들에겐 창작이었고 실험이었고 스스로를 확인하는 과정이었어요. 이제 어느정도 확신이 드는 지점들이 생긴 것 같아요. 지속적으로 지역에 관한 이야기들을 해석하고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형태의 작업들을 진행해 나갈 예정이에요. 그게 개인 창작이 될 수도 공연이 될 수도 전시가 될 수도 책이 될 수도 축제가 될 수도 있어요. 그런 일들을 주변에 유능한 장인, 예술가, 기획자, 관과 협력하며 해나가고자 합니다.
마지막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세운상가의 동쪽과 서쪽 골목 안에 손으로 썼던 간판들이 많이 남아 있어요. 그런 것들이 재밌어요. 그 간판들 중에 사장님의 아버님이 써주신 간판들도 있고... 다 지킬 수는 없겠지만, 그런 요소 요소들이 모여 좋은 유산이 되면 좋겠어요.
여기가 20세기와 21세기를 같이 볼 수 있는 지역으로 조화가 됐으면 좋겠어요. 철공업과 예술이 조화되고, 예술과 기술이 조화되고, 세대까지 조화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죠. 이 일대도 건물들이 헐리고 없어지는 것보다, 그 건물들이 함께 있으면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모습이 좋을 것 같아요.
R3028 . 서울시 중구 창경궁로 5 나길3, 2층
출처 : <세운사람들>, 서울특별시 제작, 사단법인 공공네트워크(OO은대학) 발행
2018.8 업데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