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을 걸어올라 4층에 도착하자 유리 창문에 붙은 ‘솔’이란 초록색 글씨가 옛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테이블 유리판 아래 넣어놓은 메뉴판을 구경하고 있으면 사장님은 빠른 손놀림으로 결명자차를 따라 주신다. 점심시간에는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사장님은 무척 바쁘셔서 이야기를 나누기가 힘들다. 인터뷰하기 위해 찾았지만, 모과차만 한잔 마시고 아쉽게 돌아서야 했던 솔다방 사장님을 퇴근 직전에 겨우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솔다방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소개가 거기서 거기지. 무슨 소개가 필요해.
그래도 저희는 엄청 궁금해요. 어떻게 시작하시게 되셨나요?
지금으로부터 29년 전, 1989년 12월 8일에 솔다방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어. 29살에서 30살로 막 넘어갈 때 서울로 올라왔는데 솔다방 주인이셨던 할머니랑 어떻게 인연이 돼서 여기에 발을 붙이게 됐어. 처음에는 너무 힘들어서 나가려고 그랬는데 어쩌다 보니 지금까지 하게 됐어.
그러면 할머니 뒤를 이어서 솔다방을 하시는 건가요?
할머니가 친딸이 있었는데도 나중에 나한테 가게를 물려 주셨어. 내가 할머니를 그냥 ‘엄마, 엄마’하고 불렀는데 엄마(할머니)는 내가 바지런하고 야무지게 생겼다고 좋아하셨어. 내가 옛날부터 염색이나 파마를 절대 안 했거든. 그래서 머리가 항상 검정 똑단발이었는데 그 모습이 좋으셨나 봐. 예전에는 자주 찾아뵈었는데 요즘은 찾아뵙지 못했네. 아마 살아계시면 백 살이 넘으셨을 거야.
처음 일을 시작했을 당시에 솔다방은 어땠나요?
오락기 사장이 잘 되던 때에는 이 상가가 진짜 부자였어. 그래서 그 당시에 얼마나 바빴는지 몰라. 지금은 나 혼자 하지만 그때는 식구들도 많았어. 나하고 주방언니, 수금 사원까지 4~5명 정도 있었는데 나는 주로 전화 받고 돈 계산 하는 것만 했어. 주문이 너무 많아서 전화기 3대로 주문받고 배달도 했지. 상가가 제일 활성화 됐던 때에는 진짜 너무 바빠서 교대로 밥 먹어가면서 장사했어. 요즘처럼 노는 날이 정해져 있지도 않아서 쉬는 날 없이 일했지. 요즘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대체휴일도 있고 하잖아. 그때는 토요일, 일요일도 없었어.
그 당시 어떤 메뉴를 가장 많이 찾았나요?
옛날에는 커피를 많이 마셨어. 커피 배달도 엄청 가고 그랬지. 지금도 커피는 많이 나가.
그때 이후로 새로 생긴 메뉴가 있나요?
쌍화차는 옛날부터 있었고, 미숫가루랑 모과차, 인삼차, 냉마즙, 수정과 같은 것들은 새로 생긴 메뉴야.
차 음료가 많이 생겼네요. 그럼 요즘 인기 메뉴는 어떤 게 있을까요?
요즘은 겨울이 돼서 쌍화차가 많이 나가. 쌍화차에 변화를 줘서 그런가? 쌍화차 찾는 사람들이 진짜 많아.
변화라고 하면?
그냥 뭐 견과류를 더 많이 넣어주는 거지(웃음). 원래 쌍화차의 포인트는 노랑 알이야. 쌍화차는 계란이 꼭 들어가야 하는데 다른 가게에서 파는 쌍화차는 건더기가 별로 없고 맹탕인 곳이 많아.
혹시 앞으로 아메리카노를 파실 생각은 없으세요?
지금은 아직 할 생각이 없어. 커피 내리는 법도 안 배웠고 기계도 없어. 내부 수리할 때 기계를 갖다 놓고 변화를 줘야지. 지금은 나 혼자 모든 걸 소화할 수 있는데, 커피를 뽑는 기계를 사면 바리스타 한 명을 두든지 내가 배우든지 해야 하니깐 우선은 그냥 있는 거야.
점심 때 와보면 라면 먹는 사람도 보이던데 라면은 어떻게 시작하시게 되셨어요?
라면은 한 15년 전쯤에 2년 동안 쉬려고 다른 사람한테 세를 준 적이 있었어. 그때 중국 아가씨들이 다방 일을 이어서 했는데 잘 안됐나 봐. 영업하려면 나도 움직이고 직원도 움직이고 해야 하는데 가만히 앉아만 있었던 것 같아. 결국 장사가 안돼서 그때부터 라면을 시작했대. 후에 그 아가씨들이 2년쯤 하고 나보고 다시 들어와서 하라고 그러더라고. 많이 망설였는데 어쩔 수 없는 상황이어어서 다시 들어왔지. 처음에는 라면을 팔고 있는지도 몰랐어. 라면은 안 하려고 했는데 사람들이 라면을 찾다 보니깐 안 할 수가 없었어. 그래서 했던 거야. 그런데 어쩌면 라면 한 게 잘한 것인지도 몰라.
솔다방은 옛날에도 지금이랑 인테리어가 비슷했나요?
아니지. 지금은 의자도 바꾸고 천갈이하고 그랬지. 예전에는 가죽으로 된 1인용 소파였어. 그리고 옛날에 다방 가면 있는 큰 물고기 어항 있잖아. 그런 게 이쪽 소파 사이에 있었어. 텔레비전도 배 볼록한 게 있었고. 그러다가 지금처럼 크고 얇은 텔레비전으로 바꿨지.
액자 뒤에 있는 파란 타일은 예전부터 있었던 디자인인가요?
저건 요 앞에 부동산 삼촌이 공사하고 남은 거를 갖다가 붙여 줬어 원래 아무것도 없었는데 자기 가게 고치고 남았다면서 인심 쓴 거지. 어쩌다가 인테리어가 됐어.
솔다방 특유의 매력이 있는데 앞으로 리모델링할 계획이 있나요?
수리를 좀 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지금 모습을 남기고 조금만 수리하라고 조언해줘. 뭐는 절대 바꾸지 말고 뭐는 어떻게 어떻게 하라고 일러주더라고. 나야 안 고치면 돈 안 들고 좋지. 그래도 소파는 천갈이해야 해. 낡았어.
지금 모습이 특색이 있어서 정말 종은 것 같아요. 지금까지 일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었나요?
사건이야 많지. 내 나이가 30대 초반이었을 때는 남자들이 많아서 앞에서 주방 언니가 막아주고 그랬어. 내가 예쁘장하게 생겼다고 사람들이 찾아와서 나를 ‘이쁜아, 이쁜아’ 부르면서 찾았어. 얼마나 사람들이 찾아와서 짓궂게 하는지 그럴 때마다 나는 창고에 숨어서 안 나오고 그랬었지. 술만 마셨다 하면 와서 여기 물건 두드려 부수고 땡깡을 부리고 그랬어. 얼마나 맘고생 했는지 몰라. 지금은 옛날 일은 다 잊었어. 그때 그 사람들이 가끔 여기 찾아오고 그래. 지금은 만나서 커피도 마시고 ‘그때 그랬었는데...’ 하면서 편하게 이야기 하는 게 좋아. 상가에 고함이 들렸다 하면 셔터문 닫고 그랬었는데 그땐 정말 지옥 같았어. 지금은 그런 일이 없으니까 너무 즐겁고 좋아. 나이가 드니깐 지금은 웃으면서 얘기하고 그래.
그땐 정말 힘드셨겠어요. 대단하신 것 같아요.
이 험한 바닥에서 30년 넘게 버텼다는 거는 대단하다고 생각해. 이제 연세되신 분들은 자식들한테 상가 물려주고 많이들 떠났잖아. 그분들이 이제 여기 놀러 왔다가 아직도 있냐고 하면서 깜짝 놀라고 그래. 요즘 손님들이 줄어서 나도 같이 얘기 나누기도 편하고 좋아.
요즘에는 어떤 사람들이 찾아오나요?
이 부근에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회의할 장소가 없어서 여기를 회의 장소로 많이 써. 저번에는 서울시에서 온 사람들이 여기서 모임을 했어. 프레젠테이션까지 설치하고 회의를 하더라고. 한 40명 정도가 왔는데 저녁 6시에 시작해서 10시 30분 넘어서까지 계속 얘기 나누고 오랫동안 회의했어. 그런 사람들이 여기서 서너 번 회의한 것 같아. 그리고 최근에는 세운상가에서 전시했던 작가 분들이 여기서 인터뷰도 했어.
세운 근처에서 큰 회의 종소 찾기가 쉽지가 않은 것 같아요?
주변에 이렇게 큰 자리가 마땅히 없어. 여기는 밖에 풍경도 보이면서 위치가 정말 좋아.
요즘은 이 주변이 핫플레이스로 뜨면서 솔다방이 블로그에 소개된 적도 있잖아요. 입소문 듣고 찾아오는 사람은 없나요?
저번에 분당에서 어떤 아가씨가 나랑 말 몇 마디하고 뭘 적어가고 그랬어. 그런데 자기 블로그에 솔다방에 대해 이쁘게 글을 올린 거야. 너무 이쁘게 글을 잘 썼어. 그 글을 보고 젊은 또래들이 많이 왔다 갔어. 언젠가는 아침 10시쯤에 전화가 와서 ‘몇 시에 문 열어요?’라고 묻더라고. 그래서 ‘8시에서 8시 30분 사이에 문 엽니다.’ 그랬어. 그랬더니 조금 이따 젊은 여자 둘이 와서 라면도 먹고 쌍화차도 먹고 갔어. 자기들이 아침에 전화했던 사람이라고 하더라고. 요즘에 이런 다방이 사실상 별로 없잖아. 그래서 너무 좋다 그러고 가더라고. 이렇게 인터넷에서 보고 찾아오는 거 보면 신기해.
요즘 젊은 언니들이 찾아와서 이야기도 나누고 몰랐던 것도 알려주고 그러니깐 살맛이 나. 우리 집에 젊은 언니들이 놀러 와서 같이 이야기 나누면, 내 자체가 젊어지는 것 같아서 좋아. 젊은 언니들이 내 인상이 차갑지 않고 좋다고 말해주니깐 기분도 좋고. 그래서 요즘은 예전보다 못 벌어도 나와서 일하는 게 신나.
30년 동안 일하면서 중간에 2년 쉬었다고 하셨잖아요. 그동안에 무엇을 하셨나요?
내가 10년 동안 거의 1년, 365일 나와서 일을 했어. 그래서 좀 쉬고 싶어서 2년 동안 세를 주고 쉬었어. 처음에는 부족한 것들을 배운다고 학원에 다녔어. 그런데 그것도 돈을 벌면서 배우러 다녀야 하는데 막상 쉬면서 뭐를 배우려고 하니깐 잡음만 많이 들고 안 되더라고. 그리고 내가 30대 후반부터 골프를 치기 시작했는데 그것도 나중에는 재미가 없더라고. 이래저래 골프도 쳤고 일요일에는 친구들이랑 동해 번쩍 서해 번쩍 놀러 갔다 오고 해볼 건 다 해봐서 이제 아쉬운 것도 없어. 일하면서 놀아야지.
2년 쉬고 일을 하러 나왔을 때 그렇게 기분이 좋고 발걸음이 날아갈 것 같은 거야. 지금도 이렇게 일하러 나오면 젊은 언니들이랑 대화할 수 있는 거잖아. 내 나이 60에 집에서 쉬면 뭐할 수 있겠어. 집에서 쉬면 잡음만 많이 생겨. 손님 없어도 그런가 보다 하면서 하는 거야. 지금도 일하니깐 너무 좋아.
그래도 지금까지 일하시는 게 힘드시지 않으세요?
그런데 사람은 있잖아. 나이가 들든 젊든 쉬고 싶은 생각을 많이 해.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소일거리가 있어야 해. 부모님이 경주 상주에서 농사를 짓고 계셨어. 부모님이 예순이 좀 넘었을 때 시골에서 농사짓는 게 힘들어 보여서 언니들하고 농사짓지 말라고 논밭을 다 남들 세 줘버렸어. 그랬더니 소일거리도 없이 두 분이 집에서 밥만 해 드신 거야. 동네 분들은 다 포도밭에 가서 일하고 그랬는데. 그러다 보니깐 엄마가 치매가 빨리 왔어. 엄마를 생각하면 늘 가슴이 아파. 그래서 일을 손에서 놓으면 안 돼. 뭐라도 쪼물딱 해야 한다고 생각해. 옛날에 콩을 세면 기억력이 돌아온다는 얘기도 있잖아.
그러면 요즘 주말에는 뭐 하세요?
이전에는 산에 주로 다녔었어. 이 상가에 등산 동호회가 있었거든. 지방으로 1인당 3만 원 정도로 지방산행을 가고 그랬어. 그런데 상가가 워낙 어렵고 그래서 몇 년 동안 한두 사람씩 빠지다 보니깐 그 산악회가 사라졌어. 한 달에 한 번씩 가는 거였는데 4~5년 동안 한 번도 안 빠지고 등산 갔었어. 그래서 내가 개근상을 탔어. 상으로 큰 액자 하나랑 소액의 상금을 주더라고 그런데 아쉽게도 사라졌어. 내가 끈기가 있어. 그래서 여기서도 오래 했지.
3년 개근이 쉽지 않은데 동호회가 사라져서 아쉽겠어요.
요즘은 그냥 약수동 집에서 여기까지 신나게 한두 시간 걸어서 왔다 갔다 해. 여름에 날씨 좋을 때는 신나게 걸어서 출근했다가 신나게 걸어서 퇴근해. 혼자 걷는 게 쉽진 않아. 딱 둘이면 좋은데. 어쨌든 혼자서 신나게 걸어서 가는 거야. 집이 근무지하고 제일 가까운 게 최고야. 남들은 1호선 타고 미어터져서 땀을 뻘뻘 흘리고 그러잖아. 나는 버스타면 널널해서 않아서 15분만 타면 도착해.
30년 동안 청계상가의 다방을 지킬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요?
난 지금도 나 자신한테 스스로 위로를 해. ‘넌 아직 젊어. 넌 아직 할 수 있어.’ 그래서 누가 뭐라 그러든 말든 젊다고 생각하고 그냥 계속하는 거지. 돈도 벌고 사람들하고 대화도 나누면서 몰랐던 부분도 알아 가면 돼. 옛날 속담도 있잖아. 도둑질 빼고는 다 배우라고. 그리고 아침에 나와서 내가 맡은 것들 열심히 하면서 쉬는 날도 없이 부지런히 살았어.
보통 몇 시에 가게 오픈 하세요?
요즘은 예전보다는 조금 늦게 열어. 한 8시에서 8시 반 사이.
늦게 오픈한다는 시간이... 기상 시간인데요!
옛날에는 7시 50분에 열었지. 요즘은 7시 되면 그냥 세수하고 옷 입고 오는 거야. 내가 이때까지 그 시간대에 맨날 나왔기 때문에 손님이 없어도 일찍 나와서 문 열어. 일찍 오시는 분들도 가끔 있고.
마지막으로, 오래 하신 만큼 솔다방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실 것 같아요. 세운상가가 어떻게 변화하길 바라시나요?
애착이야 많지. 남들 같으면 벌써 손 떼고 나갈 수도 있고. 그런데 너무 아쉬움도 많고 내 손때가 묻었는데 섣불리 남한테 준다는 것도 좀 그래. 인사도 나눌 수 있는 이런 공간을 갖고 있다는 것도 좋아.
앞으로 상가가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길 바라지. 이전처럼 활성화가 돼서 옛날 사람들이 다시 돌아와서 즐겁고 행복한 상가로 만들어 갔으면 해. 젊은 사람들이 젊은 아이템을 갖고 와서 많이 움직여 주면 더 나은 상가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되면 앞으로도 미래가 보장되지 않을까 생각해.
쌍화차 마시러 많은 사람이 왔으면 좋겠어요. 어디를 가든 먹고 쉴 곳은 필요하잖아요.
맞아. 어디를 놀러 가도 먹는 게 최고고 먹는 게 빠지면 재미가 없어.
솔다방. 청계상가 3층 특400호
출처 : <세운사람들>, 서울특별시 제작, 사단법인 공공네트워크(OO은대학) 발행
계단을 걸어올라 4층에 도착하자 유리 창문에 붙은 ‘솔’이란 초록색 글씨가 옛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테이블 유리판 아래 넣어놓은 메뉴판을 구경하고 있으면 사장님은 빠른 손놀림으로 결명자차를 따라 주신다. 점심시간에는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사장님은 무척 바쁘셔서 이야기를 나누기가 힘들다. 인터뷰하기 위해 찾았지만, 모과차만 한잔 마시고 아쉽게 돌아서야 했던 솔다방 사장님을 퇴근 직전에 겨우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솔다방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소개가 거기서 거기지. 무슨 소개가 필요해.
그래도 저희는 엄청 궁금해요. 어떻게 시작하시게 되셨나요?
지금으로부터 29년 전, 1989년 12월 8일에 솔다방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어. 29살에서 30살로 막 넘어갈 때 서울로 올라왔는데 솔다방 주인이셨던 할머니랑 어떻게 인연이 돼서 여기에 발을 붙이게 됐어. 처음에는 너무 힘들어서 나가려고 그랬는데 어쩌다 보니 지금까지 하게 됐어.
그러면 할머니 뒤를 이어서 솔다방을 하시는 건가요?
할머니가 친딸이 있었는데도 나중에 나한테 가게를 물려 주셨어. 내가 할머니를 그냥 ‘엄마, 엄마’하고 불렀는데 엄마(할머니)는 내가 바지런하고 야무지게 생겼다고 좋아하셨어. 내가 옛날부터 염색이나 파마를 절대 안 했거든. 그래서 머리가 항상 검정 똑단발이었는데 그 모습이 좋으셨나 봐. 예전에는 자주 찾아뵈었는데 요즘은 찾아뵙지 못했네. 아마 살아계시면 백 살이 넘으셨을 거야.
처음 일을 시작했을 당시에 솔다방은 어땠나요?
오락기 사장이 잘 되던 때에는 이 상가가 진짜 부자였어. 그래서 그 당시에 얼마나 바빴는지 몰라. 지금은 나 혼자 하지만 그때는 식구들도 많았어. 나하고 주방언니, 수금 사원까지 4~5명 정도 있었는데 나는 주로 전화 받고 돈 계산 하는 것만 했어. 주문이 너무 많아서 전화기 3대로 주문받고 배달도 했지. 상가가 제일 활성화 됐던 때에는 진짜 너무 바빠서 교대로 밥 먹어가면서 장사했어. 요즘처럼 노는 날이 정해져 있지도 않아서 쉬는 날 없이 일했지. 요즘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대체휴일도 있고 하잖아. 그때는 토요일, 일요일도 없었어.
그 당시 어떤 메뉴를 가장 많이 찾았나요?
옛날에는 커피를 많이 마셨어. 커피 배달도 엄청 가고 그랬지. 지금도 커피는 많이 나가.
그때 이후로 새로 생긴 메뉴가 있나요?
쌍화차는 옛날부터 있었고, 미숫가루랑 모과차, 인삼차, 냉마즙, 수정과 같은 것들은 새로 생긴 메뉴야.
차 음료가 많이 생겼네요. 그럼 요즘 인기 메뉴는 어떤 게 있을까요?
요즘은 겨울이 돼서 쌍화차가 많이 나가. 쌍화차에 변화를 줘서 그런가? 쌍화차 찾는 사람들이 진짜 많아.
변화라고 하면?
그냥 뭐 견과류를 더 많이 넣어주는 거지(웃음). 원래 쌍화차의 포인트는 노랑 알이야. 쌍화차는 계란이 꼭 들어가야 하는데 다른 가게에서 파는 쌍화차는 건더기가 별로 없고 맹탕인 곳이 많아.
혹시 앞으로 아메리카노를 파실 생각은 없으세요?
지금은 아직 할 생각이 없어. 커피 내리는 법도 안 배웠고 기계도 없어. 내부 수리할 때 기계를 갖다 놓고 변화를 줘야지. 지금은 나 혼자 모든 걸 소화할 수 있는데, 커피를 뽑는 기계를 사면 바리스타 한 명을 두든지 내가 배우든지 해야 하니깐 우선은 그냥 있는 거야.
점심 때 와보면 라면 먹는 사람도 보이던데 라면은 어떻게 시작하시게 되셨어요?
라면은 한 15년 전쯤에 2년 동안 쉬려고 다른 사람한테 세를 준 적이 있었어. 그때 중국 아가씨들이 다방 일을 이어서 했는데 잘 안됐나 봐. 영업하려면 나도 움직이고 직원도 움직이고 해야 하는데 가만히 앉아만 있었던 것 같아. 결국 장사가 안돼서 그때부터 라면을 시작했대. 후에 그 아가씨들이 2년쯤 하고 나보고 다시 들어와서 하라고 그러더라고. 많이 망설였는데 어쩔 수 없는 상황이어어서 다시 들어왔지. 처음에는 라면을 팔고 있는지도 몰랐어. 라면은 안 하려고 했는데 사람들이 라면을 찾다 보니깐 안 할 수가 없었어. 그래서 했던 거야. 그런데 어쩌면 라면 한 게 잘한 것인지도 몰라.
솔다방은 옛날에도 지금이랑 인테리어가 비슷했나요?
아니지. 지금은 의자도 바꾸고 천갈이하고 그랬지. 예전에는 가죽으로 된 1인용 소파였어. 그리고 옛날에 다방 가면 있는 큰 물고기 어항 있잖아. 그런 게 이쪽 소파 사이에 있었어. 텔레비전도 배 볼록한 게 있었고. 그러다가 지금처럼 크고 얇은 텔레비전으로 바꿨지.
액자 뒤에 있는 파란 타일은 예전부터 있었던 디자인인가요?
저건 요 앞에 부동산 삼촌이 공사하고 남은 거를 갖다가 붙여 줬어 원래 아무것도 없었는데 자기 가게 고치고 남았다면서 인심 쓴 거지. 어쩌다가 인테리어가 됐어.
솔다방 특유의 매력이 있는데 앞으로 리모델링할 계획이 있나요?
수리를 좀 해야 한다고 생각해.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지금 모습을 남기고 조금만 수리하라고 조언해줘. 뭐는 절대 바꾸지 말고 뭐는 어떻게 어떻게 하라고 일러주더라고. 나야 안 고치면 돈 안 들고 좋지. 그래도 소파는 천갈이해야 해. 낡았어.
지금 모습이 특색이 있어서 정말 종은 것 같아요. 지금까지 일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었나요?
사건이야 많지. 내 나이가 30대 초반이었을 때는 남자들이 많아서 앞에서 주방 언니가 막아주고 그랬어. 내가 예쁘장하게 생겼다고 사람들이 찾아와서 나를 ‘이쁜아, 이쁜아’ 부르면서 찾았어. 얼마나 사람들이 찾아와서 짓궂게 하는지 그럴 때마다 나는 창고에 숨어서 안 나오고 그랬었지. 술만 마셨다 하면 와서 여기 물건 두드려 부수고 땡깡을 부리고 그랬어. 얼마나 맘고생 했는지 몰라. 지금은 옛날 일은 다 잊었어. 그때 그 사람들이 가끔 여기 찾아오고 그래. 지금은 만나서 커피도 마시고 ‘그때 그랬었는데...’ 하면서 편하게 이야기 하는 게 좋아. 상가에 고함이 들렸다 하면 셔터문 닫고 그랬었는데 그땐 정말 지옥 같았어. 지금은 그런 일이 없으니까 너무 즐겁고 좋아. 나이가 드니깐 지금은 웃으면서 얘기하고 그래.
그땐 정말 힘드셨겠어요. 대단하신 것 같아요.
이 험한 바닥에서 30년 넘게 버텼다는 거는 대단하다고 생각해. 이제 연세되신 분들은 자식들한테 상가 물려주고 많이들 떠났잖아. 그분들이 이제 여기 놀러 왔다가 아직도 있냐고 하면서 깜짝 놀라고 그래. 요즘 손님들이 줄어서 나도 같이 얘기 나누기도 편하고 좋아.
요즘에는 어떤 사람들이 찾아오나요?
이 부근에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회의할 장소가 없어서 여기를 회의 장소로 많이 써. 저번에는 서울시에서 온 사람들이 여기서 모임을 했어. 프레젠테이션까지 설치하고 회의를 하더라고. 한 40명 정도가 왔는데 저녁 6시에 시작해서 10시 30분 넘어서까지 계속 얘기 나누고 오랫동안 회의했어. 그런 사람들이 여기서 서너 번 회의한 것 같아. 그리고 최근에는 세운상가에서 전시했던 작가 분들이 여기서 인터뷰도 했어.
세운 근처에서 큰 회의 종소 찾기가 쉽지가 않은 것 같아요?
주변에 이렇게 큰 자리가 마땅히 없어. 여기는 밖에 풍경도 보이면서 위치가 정말 좋아.
요즘은 이 주변이 핫플레이스로 뜨면서 솔다방이 블로그에 소개된 적도 있잖아요. 입소문 듣고 찾아오는 사람은 없나요?
저번에 분당에서 어떤 아가씨가 나랑 말 몇 마디하고 뭘 적어가고 그랬어. 그런데 자기 블로그에 솔다방에 대해 이쁘게 글을 올린 거야. 너무 이쁘게 글을 잘 썼어. 그 글을 보고 젊은 또래들이 많이 왔다 갔어. 언젠가는 아침 10시쯤에 전화가 와서 ‘몇 시에 문 열어요?’라고 묻더라고. 그래서 ‘8시에서 8시 30분 사이에 문 엽니다.’ 그랬어. 그랬더니 조금 이따 젊은 여자 둘이 와서 라면도 먹고 쌍화차도 먹고 갔어. 자기들이 아침에 전화했던 사람이라고 하더라고. 요즘에 이런 다방이 사실상 별로 없잖아. 그래서 너무 좋다 그러고 가더라고. 이렇게 인터넷에서 보고 찾아오는 거 보면 신기해.
요즘 젊은 언니들이 찾아와서 이야기도 나누고 몰랐던 것도 알려주고 그러니깐 살맛이 나. 우리 집에 젊은 언니들이 놀러 와서 같이 이야기 나누면, 내 자체가 젊어지는 것 같아서 좋아. 젊은 언니들이 내 인상이 차갑지 않고 좋다고 말해주니깐 기분도 좋고. 그래서 요즘은 예전보다 못 벌어도 나와서 일하는 게 신나.
30년 동안 일하면서 중간에 2년 쉬었다고 하셨잖아요. 그동안에 무엇을 하셨나요?
내가 10년 동안 거의 1년, 365일 나와서 일을 했어. 그래서 좀 쉬고 싶어서 2년 동안 세를 주고 쉬었어. 처음에는 부족한 것들을 배운다고 학원에 다녔어. 그런데 그것도 돈을 벌면서 배우러 다녀야 하는데 막상 쉬면서 뭐를 배우려고 하니깐 잡음만 많이 들고 안 되더라고. 그리고 내가 30대 후반부터 골프를 치기 시작했는데 그것도 나중에는 재미가 없더라고. 이래저래 골프도 쳤고 일요일에는 친구들이랑 동해 번쩍 서해 번쩍 놀러 갔다 오고 해볼 건 다 해봐서 이제 아쉬운 것도 없어. 일하면서 놀아야지.
2년 쉬고 일을 하러 나왔을 때 그렇게 기분이 좋고 발걸음이 날아갈 것 같은 거야. 지금도 이렇게 일하러 나오면 젊은 언니들이랑 대화할 수 있는 거잖아. 내 나이 60에 집에서 쉬면 뭐할 수 있겠어. 집에서 쉬면 잡음만 많이 생겨. 손님 없어도 그런가 보다 하면서 하는 거야. 지금도 일하니깐 너무 좋아.
그래도 지금까지 일하시는 게 힘드시지 않으세요?
그런데 사람은 있잖아. 나이가 들든 젊든 쉬고 싶은 생각을 많이 해.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소일거리가 있어야 해. 부모님이 경주 상주에서 농사를 짓고 계셨어. 부모님이 예순이 좀 넘었을 때 시골에서 농사짓는 게 힘들어 보여서 언니들하고 농사짓지 말라고 논밭을 다 남들 세 줘버렸어. 그랬더니 소일거리도 없이 두 분이 집에서 밥만 해 드신 거야. 동네 분들은 다 포도밭에 가서 일하고 그랬는데. 그러다 보니깐 엄마가 치매가 빨리 왔어. 엄마를 생각하면 늘 가슴이 아파. 그래서 일을 손에서 놓으면 안 돼. 뭐라도 쪼물딱 해야 한다고 생각해. 옛날에 콩을 세면 기억력이 돌아온다는 얘기도 있잖아.
그러면 요즘 주말에는 뭐 하세요?
이전에는 산에 주로 다녔었어. 이 상가에 등산 동호회가 있었거든. 지방으로 1인당 3만 원 정도로 지방산행을 가고 그랬어. 그런데 상가가 워낙 어렵고 그래서 몇 년 동안 한두 사람씩 빠지다 보니깐 그 산악회가 사라졌어. 한 달에 한 번씩 가는 거였는데 4~5년 동안 한 번도 안 빠지고 등산 갔었어. 그래서 내가 개근상을 탔어. 상으로 큰 액자 하나랑 소액의 상금을 주더라고 그런데 아쉽게도 사라졌어. 내가 끈기가 있어. 그래서 여기서도 오래 했지.
3년 개근이 쉽지 않은데 동호회가 사라져서 아쉽겠어요.
요즘은 그냥 약수동 집에서 여기까지 신나게 한두 시간 걸어서 왔다 갔다 해. 여름에 날씨 좋을 때는 신나게 걸어서 출근했다가 신나게 걸어서 퇴근해. 혼자 걷는 게 쉽진 않아. 딱 둘이면 좋은데. 어쨌든 혼자서 신나게 걸어서 가는 거야. 집이 근무지하고 제일 가까운 게 최고야. 남들은 1호선 타고 미어터져서 땀을 뻘뻘 흘리고 그러잖아. 나는 버스타면 널널해서 않아서 15분만 타면 도착해.
30년 동안 청계상가의 다방을 지킬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요?
난 지금도 나 자신한테 스스로 위로를 해. ‘넌 아직 젊어. 넌 아직 할 수 있어.’ 그래서 누가 뭐라 그러든 말든 젊다고 생각하고 그냥 계속하는 거지. 돈도 벌고 사람들하고 대화도 나누면서 몰랐던 부분도 알아 가면 돼. 옛날 속담도 있잖아. 도둑질 빼고는 다 배우라고. 그리고 아침에 나와서 내가 맡은 것들 열심히 하면서 쉬는 날도 없이 부지런히 살았어.
보통 몇 시에 가게 오픈 하세요?
요즘은 예전보다는 조금 늦게 열어. 한 8시에서 8시 반 사이.
늦게 오픈한다는 시간이... 기상 시간인데요!
옛날에는 7시 50분에 열었지. 요즘은 7시 되면 그냥 세수하고 옷 입고 오는 거야. 내가 이때까지 그 시간대에 맨날 나왔기 때문에 손님이 없어도 일찍 나와서 문 열어. 일찍 오시는 분들도 가끔 있고.
마지막으로, 오래 하신 만큼 솔다방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실 것 같아요. 세운상가가 어떻게 변화하길 바라시나요?
애착이야 많지. 남들 같으면 벌써 손 떼고 나갈 수도 있고. 그런데 너무 아쉬움도 많고 내 손때가 묻었는데 섣불리 남한테 준다는 것도 좀 그래. 인사도 나눌 수 있는 이런 공간을 갖고 있다는 것도 좋아.
앞으로 상가가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길 바라지. 이전처럼 활성화가 돼서 옛날 사람들이 다시 돌아와서 즐겁고 행복한 상가로 만들어 갔으면 해. 젊은 사람들이 젊은 아이템을 갖고 와서 많이 움직여 주면 더 나은 상가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되면 앞으로도 미래가 보장되지 않을까 생각해.
쌍화차 마시러 많은 사람이 왔으면 좋겠어요. 어디를 가든 먹고 쉴 곳은 필요하잖아요.
맞아. 어디를 놀러 가도 먹는 게 최고고 먹는 게 빠지면 재미가 없어.
솔다방. 청계상가 3층 특400호
출처 : <세운사람들>, 서울특별시 제작, 사단법인 공공네트워크(OO은대학) 발행